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폐로 숨 쉬고, 눈으로 세상을 보고, 발로 걷는 것이 그 증거일까? 의학적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행위들은 생명을 지닌 존재에게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우리는 그것을 의식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정말 살아 있는 게 맞는지 되묻곤 한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담아 무언가를 할 때 비로소 '살아 있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그런 확신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 움직이는 것? 느끼는 것? 하지만 생각이나 감정조차 내 마음과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생각은 예고 없이 나를 흔들고, 감정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요동친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선뜻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생전에 보시던 성경책을 펼치게 되었다. 그 안에는 짧은 메모지 몇 장이 끼워져 있었다. 눈에 익은 익숙한 필체, 분명히 아버지가 생전에 적은 메모였다. 성경 구절을 옮겨 적은 문장이었지만, 그 의미는 선명하지 않았다. 한동안 그 문장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어쩌면 언젠가 나에게 전해주고 싶으셨던 성경 구절이었을지 모른다.
그 순간 아버지가 몹시 가까이 느껴졌다. 마치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그 메모지로 아버지가 마치 내 곁에 살아 계신 것처럼 느꼈다.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이 모순이, 내 안에서 진짜 질문을 끌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왜 나는 나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하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존재는 이토록 선명하게 느끼는 것인지, 생각은 점점 더 깊은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살아 있다는 감각은 생물학적인 조건만이 아니라, 그 상태를 의식하려는 노력이나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매일 아침, 습관처럼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사람. 하루의 끝에서 '나는 오늘 어떻게 살았는가'를 되묻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
반대로, 존재의 이유를 묻지 않는 삶, 자신에게 침묵한 채 흘려보내는 시간은 이미 죽은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살아 있다는 것은, 단지 숨을 쉬고 내뱉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늘 깨어 있는, 즉 스스로를 향해 눈을 뜨려는 노력이나 마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