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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09. 2022

내가 후져서

영화 <오직 그대만>

영화를 심도있게 보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최소한 3번을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와 분위기를 느끼고, 두 번째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음미하고, 세 번째는 OST나 인상 깊었던 장면에 집중하면서 그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갖는 의미를 조망한다.


모든 영화를 다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영화를 보면서 제일 포인트를 두는 건, 대사 그리고 장면 장면에 담긴 인물의 감정선과 영화에서 그것이 갖는 의미이다. 가끔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그 부분만 다시 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주목했던 영화들의 대사나, 장면은 대체로 기억하는 편이다. 가끔 힘들 때나 현실에서 영화 속 장면과 비슷한 상황에 부딪힐 때 오래전에 봤던 영화를 떠올리며 힘을 얻곤 했다. 특히 기분이 처질 때 언젠가 봤던 유쾌한 장면을 떠올리며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려고 노력했다.


오늘 소개하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소지섭, 한효주 주연의 영화 <오직 그대만, 2011>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순전히 영화에 나오는 대사 때문이었다.

한때 잘 나가는 복싱 선수였으나 청부폭력을 한 혐의로 교도소를 다녀온 후 새벽에는 생수 배달을, 밤에는 주차요원으로 근무하며 복서로서의 꿈을 잃은 채 하루하루를 별 의미 없이 살아가는 철민(소지섭), 그가 주차요원으로 일하게 된 첫날, 불의의 교통사고로 눈을 다쳐 시력을 서서히 잃어가는 콜센터 직원 정화(한효주)를 만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철민과 정화는 주차박스에서 함께 TV 드라마를 보면서 점점 더 가까워지고, 그러던 어느 날 함께 TV를 본 후 주차장을 나서던 정화가 사고로 다리를 다치자 철민이 그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 치료를 받게 해 준 것을 계기로 그들은 콘서트를 함께 보러 갈 정도로 친해진다.

철민에게 호감이 있던 정화는 당연히 그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하고, 철민은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굳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형성된다. 헤어지면서 "오늘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어요. 그쪽 너무 귀찮게 해서 미안해요."라고 다소 거리를 두는 정화의 말에 철민이 하는 대답이 이랬다.


"서른 살이고 권투했었고, 그리고 어렸을 때 아주 나쁘게 살았어요. 아주 나쁘게.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안 살아요. 그런 놈이에요, 나. 정화씨를 무시해서가 아니고, 내가 후져서 말 못했던 거예요."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잘보이고 싶고, 잘난 점을 어떻게 하면 부각시킬까를 궁구하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 그녀의 마음이 일순간에 풀렸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맞다. 저런 사람이라면 한 번쯤 사랑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말투는 어눌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멋진 고백을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다. 진실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면서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가 된 대사이기도 하다.

그 후에 이어지는 꿈같은 시간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행복한 순간은 짧다. 정화는 철민의 도움으로 잃어가던 시력을 되찾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철민은 정화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도박성 이종격투기 시합에 나가 목숨을 잃을 뻔하고, 결국 행방불명이 되고 만다.


치료를 받고 간신히 살아났지만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런 몸으로는 더는 사랑하는 이 앞에 나타날 수 없었다. 한때는 정화가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인의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 정화는 시력을 되찾아 정상인이 되고 그가 장애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때 철민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정화는 정상인으로 살아가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비어있다. 수술실 앞,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과 달리 사라진 철민, 그가 채워주지 않으면 어떤 것으로도, 어떤 사람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그녀 안에 남았다.

영화의 끝장면, 그들만이 아는 장소에서 해후한 그들은 서로를 안고 운다. 정화는 얼굴은 모르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철민을 만나서, 철민은 이제 장애인이 되어 아무 쓸모도 없는 자신을 잊지 않고 여전히 사랑하는 정화를 보고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한다. 그때 그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할 즈음, 철민이 정화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말, "사랑한다. 정화야!" (엔딩 씬이 올라갈 때 나오니 이 부분을 놓친 사람들이 많을 거다. 꼭 들어보시기를!!) 사랑하더라도 막상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 이 말을 한다. 배우 소지섭의 멋진 목소리, 그는 언젠가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시력을 잃어가는 여주인공을 왜 사랑하는지 찾다가 '사랑은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사랑할 땐 그냥 사랑하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 쪽으로 상대를 끌어당기려다 문제가 생기는 거죠."


그의 말대로 사랑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지 모르는데. 사랑은 언제나 현실을 뛰어넘는 무조건적이고 배타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아는 사랑이었고 그들이 했던 사랑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그들의 사랑을 이끌어 갔다. 사랑하면 집착하게 되고, 집착하면 상대를 소유하려는 즉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지만, 그들은 그것마저 극복한 것이다.


어찌 보면 전형적이고 결말이 예상되는 뻔한 러브 스토리에 때로 한국적 신파가 떠올라 사람을 울게 만드는 영화,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요즘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부터도 그렇지 못했으니. 그래서 영화는 묻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사랑을 아느냐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슴 아픈 진정한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느냐고.

사실 나는 이 영화를 중간 부분, 철민이 정화의 수술비를 대주고 외국으로 시합을 떠나는 부분부터 건너뛰고 보지 않은 적이 여러 번이다. 그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에도 기쁜 장면이 있고 슬픈 장면이 있듯, 내 인생도 어느 순간 이렇게 멈출 수만 있다면, 그래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반복해서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인생에 중단이란 없다. 영화도 인위적으로 중단하는 것이지 멈춘다고 결론이 바뀌지는 않는다.


정화의 시력 상실이 실은 철민의 과거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정화를 향한 그의 마음이 이해되는 것을 넘어서 나도 안타까웠다. 운명적인 인연일까. 청부폭력배 시절, 돈을 받으러 나타난 철민을 피해 분신자살을 시도하던 채무자가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그 현장을 보고 놀란 반대편 차량과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정화의 자동차가 충돌하게 된다.


그 사고로 정화의 부모는 현장에서 사망하고, 정화는 시력을 잃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철민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자신의 눈이라도 빼어서 정화에게 주고 싶지 않았을까.


또 하나 가슴이 뭉클했던 장면은 시력을 회복한 정화가 과거 철민을 볼 수 없었을 때 손의 감촉만으로 기억했던 그의 얼굴을 조각하는 장면이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녀는 그때 느꼈던 감각에 의존해 그의 얼굴을 완성해 간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가면서 그녀가 느꼈을 아픔과 회한은 또 어떠했을까.

또 한 장면은 반려견 딩가와 관련된 장면이다. 정화가 직장 상사의 추근거림과 폭력으로 직장을 그만두자 철민은 혼자 사는 게 적적할 거라면서 말동무나 하라고 반려견을 사준다. 그 반려견이 다 커서 철민을 대신해 정화를 지키게 되었다. 그 후 장애인이 되어 목발을 짚고 나타난 철민, 정화는 당연히 그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반려견 딩가는 타고난 후각으로 철민을 기억해 낸다.


평소와 다른 딩가의 태도, 그러나 그 순간에도 정화는 철민을 알아보지 못하고, 철민 역시 정화에게 선뜻 자신을 밝히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아는 체를 할 수 없었던 철민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정화 역시 뭔가 이상했었는지, 그녀의 가게를 들른 사람이 철민임을 뒤늦게 알게 되고 그를 찾아 나서지만 끝내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때 정화가 느꼈을 낭패감과 절망감은 또 어떠했을까. 그녀의 비통한 오열에 같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영화에선 두 인물이 느껴야만 했을 가슴 아픈 장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너무 사랑해서 이제 정상인으로 잘 살고 있는 정화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사라져야 한다고 마음먹은 철민, 그런 철민을 잊지 못해 마음으로 새긴 그를 품고 살았던 정화. 둘 다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였으리라.


영화 초반, 주차 관리원 자리를 철민에게 넘기면서 노인은 신문에서 본 운세를 말해준다. "좋은 시간은 신께서도 질투한다."고. 어쩌면 이 대사 속에 그들의 힘든 사랑의 여정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시간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렵고 힘든, 때로는 운명의 장난 같은 시련을 통과해야 비로소 주어지는 귀한 열매와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결과만 보고 해피엔딩이네 하지만 해피엔딩조차도 반드시 겪어야 할 우여곡절이 있는 것이다.


자칫 엇갈릴 수도 있는 운명의 순간을 두 남녀는 사랑의 힘에 의지해 극복해냈다. 보통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을 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두 사람의 사랑을 보면서 인간의 사랑이 불완전하다고 해도, 때로 그 불완전함을 뛰어넘어 완전함에 다가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장면 장면에 담긴 그들의 마음과 안타까운 심정을 읽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때로 진부하지만, 장면 하나하나에 몰입하면 이 영화만큼 가슴에 와닿는 영화도 근자에 없었다.


“기억하는 게 많으면 지금도 다 볼 수 있거든요. 이럴 줄 알았으면 잘 봐둘걸.” 함께 콘서트를 보고 식당에서 정화가 철민에게 했던 말이다. 사고로 잃은 아버지를 지칭한 것이지만, 어쩌면 정화는 사라진 철민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했던 이 말을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그에 대해 기억하는 게 많았을 테니, 그 기억의 힘으로 그가 없는 시간을 견디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오직 그대만'을 품었던 그녀의 사랑이었다.

"오래전 썼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화려한 비탄이라도 남지만 이루어진 사랑은 남루한 일상을 남길뿐이라고. 나,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여전히 간절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여전히 새들은 노래하고 별들은 빛난다는 걸 안다. (...) 작별 이후 내가 게으른 것으로 너의 부재를 실감한다.


한때 사랑하였으나 빛을 잃고 흘러가버린 것들이, 이 아침 나를 쓸쓸하게 한다. 가차 없는 무심과 무정함이. 그렇다. 나는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보아버렸다. 그 이후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은 상실이라는 이름의 풍경이다."


<은희경 _ 생각의 일요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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