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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24. 2022

상심(傷心)

후배 검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예전에 내가 부장으로 있었던 부의 소속 검사였다. 얼마 전 인사에서 원하는 부서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섭섭함이 묻어 있었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걱정을 했는데, 상심(傷心)이 클 것 같았다.


나름 열심히 일했고, 능력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 알아주지 않으면 속상하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좌절하게 된다. 냉소적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와 통화하면서 평검사 시절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와 비슷한 경력의 검사였을 때 나도 그랬다.


당시 나는 이렇게 마음을 수습했다. 아니, 수습해야만 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내가 어디에 쓰일지는 내 선택이 아니라고. 쓰임을 받으면 나아가고 그렇지 않으면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혀지면 잊히리라고.'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섭섭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던 기억이 난다.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되뇌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그랬다. 그들은 나라로부터 쓰임을 받으면 벼슬자리로 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초야에 묻혀 글을 읽었다. 쓰이면 능력을 펼쳐 나라와 백성들을 이롭게 하고, 그렇지 못하면 유유자적하면서 학문을 연마했던 것이다.


오히려 후자에 속하는 선비들이 남긴 책과 글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주고 있다. 그들은 글로 이름을 남겼지만, 벼슬을 하며 한 시대를 호령했던 이들은 우리 기억에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뭐가 좋은지 알 수 없다.


그들도 당시에는 알지 못했으리라. 관직에 나갔던 사람들만 칭송받고 그렇지 못한 선비들은 이름도 없이 사라지리라고 생각했으리라. 지나고 나서야 그 뜻을 헤아릴 수 있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하여, 당장의 선택에 너무 실망하지 말 일이다.


살다 보면 마음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 선비들처럼 끊임없이 마음을 비워가야 할 이유이다. 그 후배도 마음을 잘 추슬렀으면 좋겠다.


傷心, 그 시간은 누구의 위안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할 시간이다. 시간만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리라 믿어야 한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도 있는 것이다.

오래전에 본 일본 영화가 있다. <いま、会いにゆきます> 우리나라에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로 번역된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들인 다케우치 유코(미오 역)와 나카무리 시도(타쿠미 역)는 실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혼했다. 그들이 왜 이혼했는지는 굳이 알고 싶지 않다. 사생활이기도 하고, 이젠 유코가 고인이 되었으니.


혹자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지고지순한 사랑은 현실이 아닌 영화 속에서나 찾을 수 있다는 체념 비슷한 것이리라.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의문이 들었다.


왜 그들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처럼 살지 못했을까. 아니, 우리는 왜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오랫동안 서로를 사랑하며 살지 못하는 것일까,라고 묻는 것이 맞겠다. 첫 순간에 느꼈던 감정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행복했어요.

당신을 좋아하게 된 후부터 쭉...

나의 행복은 말이에요. 당신이에요.

그냥 당신 곁에 있는 게 있기만 하면 되는 걸요.

알고 있어요?

그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라는 거.

 

<이치카와 다쿠지 _ いま、会いにゆきます>  




미오의 대사는 여전히 가슴을 울리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녀 역시 자신의 희망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인지도. 행복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가치라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는, 그것도 기억을 잃은 채... 약간은 판타지가 가미된 영화. 기억이 다시 살아날 무렵 다시 사라져야 하는, 그래서 남겨진 이들은 그녀를 그리워하며 슬픔과 傷心속에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하는 영화. 오래전에 봐서 줄거리는 이 정도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만들어졌지만, 나는 원작이 더 좋다. <리틀 포레스트>가 원작의 분위기를 따라갈 수 없듯이 이 영화도 다르지 않다. 아마 배우들의 분위기, 눈빛과 어감, 연기의 깊이 등이 동명의 우리 영화보다 훨씬 더 몰입하게 만들기 때문인 것 같다. 첫인상이 뇌리에 깊이 새겨진 탓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는 경우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유행가의 가사들이 주로 이별을 노래하고, 듣다 보면 내 이야기 같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누구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고 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영화처럼 생과 사를 건너가면 모를까. 진정한 사랑은 그런 현실을 뛰어넘는 어떤 정신적인 것이라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금수>에서 헤어진 전 남편이 전 배우자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인생이란 어쩌면 그렇게 슬픔으로 가득  것일까요? 아니, 그런  써야  것이 아니었네요.’


그들도 원치 않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10년 만에 사랑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 잠깐 안부를 묻고 각자 가던 길로 가야만 할 때 심정이 어땠을까. 그리고 주고받은 편지들...


서로에 대한 회한과 안타까움, 그 결과로 남은 傷心이 편지 곳곳에 담겼다. 사랑하는 이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으니. 차라리 생과 사로 갈렸다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정리하기라도 할 텐데. 때로 상황에 무력하기만 한 것이 우리 인간이다. 어찌 그들만 그렇겠는가? 영화 속 주인공들도 그렇고, 우리 또한 다를 바 없는데...


내 인생의 여름밤이 지나간다. 속절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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