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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담아듣고 눈여겨보지 않으면

by 서영수

주말은 몸과 마음이 쉽게 느슨해지는 시간이다. 출근할 때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늦잠을 자거나 한 끼를 건너뛰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즉 평소 지키던 루틴조차 무시해도 괜찮은 날이다. 나도 한동안 그렇게 살았다. 금요일 밤엔 평소보다 늦게 자고, 토요일 아침엔 눈을 떠도 한참을 누워 있었다. '이런 여유도 가끔은 필요하지'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하지만 주말이 끝날 무렵이면 이상하게 공허했다. 몸과 마음이 회복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지쳤다. 특히 일요일 저녁이 되면 다음날 출근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마음이 더 가라앉았다. 특별히 한 일도 없이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이틀이라는 시간이 휙 지나간 게 허무했다. 이번 주말에는 이런 책을 읽어야지, 이곳을 가야지, 누구를 만나야지 하고 세운 계획들도 번번이 흐지부지됐다.


물론 주말을 꼭 계획적으로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게 진짜 휴식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충 흘려보낸 시간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주말에도 평일처럼 일어나려고 노력한다. 금요일 밤에 늦게 자는 습관도 고치는 중이다. 괜히 재미있는 방송을 보다 보면 자정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지만, 중간에 끄고 자리에 눕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잠을 얼마나 자든 피곤함은 여전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는, 차라리 평소 루틴대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중이 잘 되는 오전 시간엔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 그렇게라도 따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아무리 시간이 많이 주어져도 오히려 평일보다 책을 덜 읽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라도 2시간쯤 집중해서 읽으면, 평일 내내 읽었던 분량보다 더 많이 읽을 수 있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나면, 나머지 시간을 조금 느슨하게 보내도 덜 아쉬웠다.


돌이켜 보면, 무엇을 하든 ㅡ 그게 나에게 특별히 유익한 일이 아니더라도 ㅡ 몰입해서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처럼. 대충 보낸 시간은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시간은 결국 내 인생에서 별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공백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 공백의 시간만큼 삶은 허무해진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사람은 기억을 먹고 산다. 언젠가 더 나이가 들었을 때, 그 기억이 노년의 무료한 시간을 버틸 힘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일상의 삶에서 좋은 기억을 남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읽다가 발견한 문장 한 줄, 우연히 들은 음악, 목적 없이 걷다가 마주친 풍경, 잠시 스쳐갔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 이런 것들이 내 삶에 아로새겨지기 위해선 그 순간에 몰입해야 한다. 귀담아듣고, 눈여겨보고, 마음을 쏟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매 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주어진 삶에 충실하는 것, 그게 내가 요즘 주말을 대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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