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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n 11. 2022

가장 보통의 연애

평소 퇴근 후에는 가볍게 걸었는데, 답답해서 어제는 좀 뛰었다. 오랜만에 달리니 숨은 차지만, 머리는 맑아졌다. 역시 마음이 복잡하면 몸을 움직여야 하는구나 싶었다.


가끔은 예전에 봤던 영화 속 유쾌한 장면을 떠올려 보는 것도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좋은 방법이다. 오늘은 원래 영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뛰다가 문득 몇 년 전에 본 영화가 생각났다. 배우 공효진과 김래원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2019>


두 사람 모두 실연의 상처가 있다. 재훈(김래원)은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여자친구의 뜻밖의 배신으로 파혼하고 매일 술을 벗 삼아 살아간다. 한마디로 상처가 깊다는 말이다.


선영(공효진) 역시 직장에 출근하는 첫날 남자친구와 헤어진다. 비슷한 처지의, 또래의 두 남녀가 한 직장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만났으니 일이 안 일어날 수가 없다.

내가 영화에서 주목했던 건 주인공인 선영의 대사, 이런 솔직한 여자라면 한 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대사는 촌철살인을 넘어서 압권이다. 어떤 남자도 그녀 앞에선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면 장면, 대사 하나하나를 음미하면 나름 인생과 사랑에 대한 철학까지 배울 수 있다.


뜻하지 않게 내 말과 행동이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선 솔직하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한마디로 재고 내숭 떨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이왕이면 말도 재밌고 재치있게 해야 한다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오늘 소개할 부분은 회식을 하고 술에 취한 선영이 길거리에서 토악질을 하고, 옆에 있던 재훈이 그런 선영을 도와주는 장면이다. 술에 만취한 선영은 집에 가기 위해 찻길 한복판에서 택시를 잡으려다가 자칫 교통사고를 당할 뻔하고, 재훈은 황급히 선영을 구하기 위해 그녀를 끌어안는다.


"너 미쳤나 봐."라고 말하는 재훈에게 선영이 하는 말이 이렇다. "내가 이렇게 하니까 남녀 간의 스킨십도 생기고 막 설레고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남자 여자가 이럴 때 제일 재밌더라. 막상 연애 시작하면 지루하고 괴로운 거 투성이지."

'ㅎㅎ 맞네. 설렐 때가 제일 좋긴 하지.' 막상 본격적으로 관계가 시작되면 서로 밀고 당기고, 사랑을 이유로 집착하다가 급기야 질투에까지 이르게 되면 괴로움이 쌓이는 건 자명한 이치다.


설렘, 그건 사랑의 첫 단계에서 느끼는 순수한 감정이니, 그런 설렘이 없다면 사랑은 시작될 수 없는 거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고, 뭔가 시작하면 그때부터 감정에 힘이 들어가면서 괴로움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게 우리가 했던 '가장 보통의 사랑'이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는지 생각했다. 설렘이 사라진 날들, 그렇게 세월이 갔구나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만 남고, 순간 씁쓸해졌다.


영화에서 선영이 하는 말은 대부분 맞다. 약간 거칠어 보일 수 있지만, 아주 진솔하고 담백하다. 배우 공효진의 이미지와 맞물려, 보는 내내 웃다가 속상했다가 그랬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별로였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시 영화 속 한 장면. 약간 비속어가 등장하지만 이해하시라, 그게 우리의 솔직한 감정이니까. 헤어진 여자친구를 잊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재훈과 술을 마시다가, 술에 취해 재훈에게 선영이 스킨십을 한 문제로 두 사람 사이에 언쟁이 붙었다.


'왜 그랬냐고, 직장 생활 편하게 하려고 그랬냐?' 마치 좋아서 그랬다기보다는 상사인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그런 거 아니냐고 불퉁하게 말하는 재훈에게 선영이 하는 말이 또 이렇다.


(선영) "재수 없어서. 여자가 봐도 쪽팔린 딱 그런 무슨 쌍년 때문에 그 꼴을 하고 있는 게. 끝까지 주인 보면서 꼬리 흔드는 무슨 복날 개 같아서 그랬다 왜."


(재훈) "다른 놈들이 너 술 취해서 안기고 그러는 거 너 어떻게 해 보려고 그러는 거야. 나이는 많아 가지고 진짜 한심하다. 불쌍하다. 짠해."


(선영) "너도 짠한 노총각이야. 그냥 딱 봐도 아저씨. 나이는 뭐 나 혼자 먹니?"


(재훈) "어디 남자가 여자랑 같아?"


(선영) "같지. 다르다고 배웠니? 너는."

선영의 연기와 그녀의 대사는 아주 리얼하다. 하나같이 맞는 말이라 내가 재훈이었다고 해도 딱히 할 말을 찾기 어려웠을 것 같다. 영화는 남자는 되는데 왜 여자는 안되냐는 선영의 반문을 통해 비틀어진 남녀 간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심지어 오해가 쌓여 소위 '왕따'를 당하게 되는 사람의 심정까지도.


물론 우린 영화평론가가 아니니, 영화를 보면서 굳이 그 정도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냥 유쾌하게 보면 그걸로 충분하다.


뭔가 답답하거나 잘 안 풀리는 일이 있으면 주말에 이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가볍게 기분 전환하기에 좋은 영화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장 보통의 연애'를 담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 기억으로는) 해피 엔딩이기도 하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꾸 만나고 싶어 해. 왠 줄 알아?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사랑이 되질 않거든.


만나서 그 사실을 자꾸 확인하고

또 표현하고 싶어지는 게 사랑이라구."


<은희경 _ 생각의 일요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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