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아침, 창밖의 나무들이 젖은 잎사귀를 흔들며 바람에 응답하고 있었다. 9월이 들어서면서 아침저녁으로 바람의 결이 예전과 사무 다르다. 창문을 열면서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또 한 달의 시작을 바라본다. 달력은 분명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지난 계절에 묶여 있는 듯하다.
시간이 흘러가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비슷한 질문 앞에 선다. 무엇을 얻었는지를 그리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돌아보면 즐거웠던 순간들은 바람처럼 쉽게 흩어지고, 남는 건 대개 아쉬움과 상처들이다. 그 자국들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더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라는 존재의 모양을 바꾸어 놓았을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상실과 회한만 남는 것은 아니다. 창문 너머 스며드는 선선한 공기, 손에 쥔 따뜻한 커피, 곁에 머무는 몇몇 얼굴들. 그 순간과 그 사람들로 인해 나는 여전히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불완전하고 불안정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된다.
어쩌면 계절이 반복되는 까닭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일깨우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것을 억지로 붙잡으려 하기보다, 흘러오는 것을 담담히 맞이하라고. 그렇게 흘러가야만 또 다른 자리에 설 수 있다고.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지나간 것에 마음을 오래 두지 말고 아직 내 앞에 놓여 있는 시간들을 조금 더 깊고 충실하게 살아내자고. 어쩌면 그것만이 흘러가는 계절을 견뎌내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