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공허하게 흘러갔다. 책 한 권 펼치지 못한 채 보낸 주말이었다. 드문 일이라서 그런지 불편한 마음이 오늘까지도 이어졌다. 책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찜찜함으로 이어졌고, 그 불편한 마음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단순한 습관의 균열이 아니라, 내면 어딘가 깊은 곳을 건드린 것이다.
기분은 삶의 방향을 좌우한다. 인간은 기분에 쉽게 흔들리지만, 동시에 기분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 나에게는 독서가 그런 수단이었다. 활자에 몰입하는 순간, 세상의 소음은 잠시 가라앉고 흔들리는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책상 앞에 앉아도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마음은 허공을 배회했다. 읽지 못하니 잊지 못했고, 잊지 못하니 불편함과 불안감이 더 짙어졌다.
책을 읽지 못한 날의 허전함을 종종 글쓰기에 대한 열망으로 덮은 적이 있다. 언젠가 한 소설을 읽으며 이런 다짐을 한 적이 있었다. "죽기 전에 제대로 된 글을 꼭 쓰고 싶다. 누군가의 시선을 잠시라도 붙잡을 만한 글을." 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글은 삶의 무게와 나 자신을 견뎌낸 만큼만 쓸 수 있었고, 나와 세상을 아는 만큼 깊어지는 것이었다. 아직은 읽어야 할 책이 많았고, 더 열심히 써야 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헤매고 있으니 답답하다.
집에는 여전히 손대지 못한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후배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지만,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난 듯하다. 책은 한 번 읽는다고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다른 빛이 드러나고 낯선 의미가 살아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늘 시간에 쫓겨 마음만 분주할 뿐, 선뜻 책 속에 빠져들지 못하고 있다.
결국 나는 책을 읽지 못해 불편하고, 읽어도 다 헤아리지 못해 다시 또 불편했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믿는다. 그것은 나를 다시 책 앞으로 이끄는 힘이며 무심히 흘러가는 삶을 붙잡아 주는 희망의 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다시 책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어제의 공허가 책 속의 어떤 문장으로 극복되고, 그 문장이 주는 힘으로 내일의 삶이 조금이나마 더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