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읽다가 자주 멈추는 편이다. 문장이 이해되지 않아서, 단어의 의미가 선명하지 않아서, 혹은 작가의 의도를 도무지 파악할 수 없어서 같은 구절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곤 한다. 물론 그런 순간이 닥치면 늘 갈등에 빠진다. 그냥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파고들 것인가. 넘어가자니 찝찝하고, 이해될 때까지 읽자니 시간이 부족하다.
전문가들 중에는 이렇게 조언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르는 부분은 과감히 넘어가라.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명 합리적인 조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다. 특히 그 책을 다시 읽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그렇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딜레마 중 하나는 시간의 유한함과 정보의 무한함 사이의 간극이다. 독서도 예외는 아니다.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책들, 아직 읽지 못한 고전들, 추천받은 책들까지 감안하면 읽어야 할 책들은 끝이 없다.
한 사람이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의 수는 대충 2,000~3,000권 정도라고 한다. 현재 전 세계에 출간된 책이 1억 3천만 권을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는 전체 지식의 극히 일부만을 접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선택의 압박을 받는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얼마나 깊이 읽을 것인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붙잡고 있을 시간적 여유는 있는가?
192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토마스 만이 쓴 『마의 산』은 독일 문학사의 걸작이지만, 동시에 악명 높은 '어려운 책'이기도 하다.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철학적 사유와 그 시대의 문화와 사조가 깊이 스며있어 완독 자체가 하나의 성취로 여겨진다. 하지만 과연 완독이 독서의 최종 목표일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우리는 정말 그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도 그 책을 읽었지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 솔직히 다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진정한 독서는 단순히 활자를 따라가는 행위가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이해하고, 자신의 경험과 연결시키며, 새로운 통찰을 얻는 과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절반만 읽었더라도 깊이 이해한 책이 완독했지만 이해하지 못한 책보다 더 가치 있는 독서일 수 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같은 책도 다른 시점에 읽으면 전혀 다른 책이 된다. 독자의 경험과 지식, 감정 상태에 따라 달리 읽히기 때문이다. 『마의 산』을 20대에 읽는 것과 40대에 읽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의 7년간의 산장 생활이 청춘에게는 답답한 정체로, 중년에게는 성찰의 시간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읽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어쩌면 불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그 책이 주는 의미를 받아들이고, 언젠가 다른 나에게 다른 의미를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놓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결국 독서는 완성이 아닌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문장을 이해하고, 모든 의미를 파악하려는 욕심보다는 지금 이 순간 그 책이 주는 의미를 받아들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완독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속도로 읽어가는 것,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전체적인 울림을 느끼는 것,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것. 이것이 진정한 독서의 자세가 아닐까.
책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급하게 쫓기듯이 읽지 말고, 천천히 읽으면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책뿐만 아니라 자신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책을 읽는 것은 곧 자신을 읽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긴 명절 연휴, 도서관에서 빌린 책과 집에 있는 책 중에서 어떤 책부터 읽을지 고민 중이다. 명절에 책에 흠뻑 빠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