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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죽음을 통해 배우는 삶

by 서영수

"현재(present)는 하늘이 준 선물이지만

유효 기간은 ‘그 순간’이다.

쓰지 않으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은

'현재'를 사용한 양에 따른다."


어디에서 본 이 글을 읽은 뒤, 문득 내가 '현재'를 얼마나 허비하며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흘려보낸 시간들, 마음 한 편의 여유조차 잃은 채 반복된 일상 속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놓치고 있었던 지난 시절이었다. 오늘 소개하는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은 그 공허의 자리를 정면으로 비추는 거울과 같은 소설이다.

소설은 주인공의 장례식으로 시작된다. 그는 젊은 시절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고, 욕망과 성공을 좇으며 살아온 인물이다. 한때는 아름다움과 활력을 누렸으나, 노년의 문턱에서 질병과 쇠락으로 우울한 삶을 살고 있다.


필립 로스는 그 과정을 냉정한 필치로 묘사한다. 주인공의 죽음은 한 개인의 안타까운 현실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가 맞닥뜨려야 할 보편적 종착지의 모습이다. 그래서 주인공의 장례식은 단지 그만의 삶의 끝이 아니라, 곧 우리 자신의 마지막을 미리 목도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주인공은 늙어가는 자신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젊음의 기억에 매달리고, 과거의 욕망을 되살리려 했지만 그것은 모래를 움켜쥐는 일처럼 허망하기만 하다.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단순히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그가 쌓아온 모든 성취가 사라진다는 사실, 즉 자신의 존재가 무無로 돌아간다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었다.


필립 로스는 이 허무의 순간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불안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묻는다. 욕망과 젊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 존재하여야 할까? 그 질문은 살아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질문이다.




소설을 읽으며 욕망을 줄이는 일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무언가를 얻고, 이기고, 쌓기 위해 산다. 하지만 삶의 후반부는 덜어내고 비어내는 시간이다. 내려놓음은 포기가 아니라, 남은 시간을 더 충실히 살기 위한 자기 정화의 과정인 것이다.


육체가 쇠하더라도 정신이 단단해질 수 있다면, 그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 필립 로스가 주인공의 몰락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인간의 존엄은 젊음이나 성공에 있지 않다고. 오히려 무너지는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 그럼에도 온전히 삶을 살아내려는 노력, 그것이야말로 삶의 품격이라고.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소설의 이 문장은 체념을 넘어 이 비루한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죽음조차 삶의 일부로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현재를 온전히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실은 '삶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허무 속에서 무너지는 모습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동시에 현재와 그 현재를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이란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오늘을 진심으로 살아내는 일이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나에게 주어진 선물로 쓸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삶은 충분히 빛날 수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을 선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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