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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탓하지 말자

by 서영수

2023년 새해 첫날 새벽, 가까운 공원으로 나갔다. 첫해가 떠오르는 풍경을 지켜보고 싶었다. 여전히 영하의 추운 날씨였다. 어둠이 걷히고 사방이 환해진 뒤에도 해는 건물에 가려져 좀체 보이지 않았다. 둘러보니 겨울나무들이 서 있었다. 잎을 다 떨군 채. 판화 속 나무들처럼 아침 하늘에 윤곽을 또렷하게 새기고 선 그 나무들을 쳐다봤다. 그때였다.


더 이상 탓하지 말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탓할 뭔가부터 찾는 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그게 정의라고 나는 생각했다. 남이든 나 자신이든 사람을 탓하거나 시스템과 조직을 탓한 적도 있었고 운명이나 신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탓할 대상을 찾고 나면 내가 그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 낸 듯한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원인을 아니 내가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자만심도 생겼다. 그러나 내 쪽에서 원인을 찾는 것과 문제가 해결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인생의 문제는 종종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생겨났다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사라지곤 했다. 큰 문제일수록 더욱 그랬다.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 지금까지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알지 못하는 게 더 많다고 인정하며 살면 어떨까? 손바닥만한 나의 경험과 지식에서 벗어나, 일이 어떻게 됐고 어떻게 될지 않다고 믿지 말고, 그게 남이든 나 자신이든 탓하지 말고, 그냥 지켜보며 살아간다면?


그러자 머리가 시원해졌다. 태양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김연수 ㅡ 몰랐기 때문에 받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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