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무너지는 사랑

by 서영수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희망을 말한다. 새로운 다짐과 희망찬 계획을 앞세우며 삶을 긍정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그렇게 환하지만은 않다. 우리는 삶을 긍정하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삶의 한 부분인 고통과 상처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다. 더구나 그건 배운다고 해서 극복되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고난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고통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그리 많지 않다. 다만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일, 고통을 고통으로 인정하는 일. 그것이 삶을 긍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세일 것이다. 시인 Kimberly Fink는 "우리는 언제나 긍정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차분히 고통을 느껴도 된다"라고 말했다. 긍정은 슬픔을 지워버리는 기술이 아니라, 슬픔을 통과하고 삶을 다시 붙드는 힘이다.


삶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관계에서도 다르지 않다. 사랑 또한 언제나 좋을 수는 없다. 오히려 관계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그 안의 균열과 침묵도 더 선명하게 감지해야 한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언젠가 한 장의 사진이 오래 눈에 남은 적이 있다.

Hans Wolfgang Müller의 작품 <The Pain of Indifference> 속 중년의 남녀. 두 사람 사이에는 말 대신 차가운 공기가 흐른다. 여자는 시선을 거두었고, 남자는 그 시선을 붙잡지 못한 채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둘 사이에 무슨 큰일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오래 이어진 침묵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격렬한 충돌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의 축적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식었음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어느 순간부터 그들 사이에 대화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곧 서로에 대해 관심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받는 가장 큰 고통은 미움이 아니라 그 무관심이다. 미움에는 아직 감정의 온기가 남아 있지만, 무관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감정이 남아 있다면 다투기라도 하겠지만, 할 말이 남지 않았을 때 관계는 서서히 메마른다.


우리는 그제야 묻게 된다. 우리가 언제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그게 정말 언제였던가.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과거를 향하는 듯하지만, 실은 현재의 공허를 드러내는 물음이다. 기억이 선명할수록 지금의 침묵은 더욱 깊어진다.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에서 "식탁에 앉아도 할 말이 없는 저녁때의 침묵"을 말하며, 그런 세계에는 정열적 사랑이 파고들 여지가 없다고 했다. 부조리는 거대한 재난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과 점점 줄어드는 말들 속에서도 서서히 자라난다. 사랑이 잠식되는 자리 역시 바로 그 일상의 한복판이다. 어쩌면 무서운 것은 페스트 자체가 아니라, 함께 있어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그 침묵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반대가 무관심이라면, 행복의 반대는 무엇일까.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나는 그것이 지루함이라고 생각한다. 지루함은 감정을 무디게 만들고, 무딘 감정은 관계를 방치한다. 방치된 관계는 결국 무관심으로 기운다. 설렘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무감각이다. 그리고 무감각과 무관심은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확실한 끝이다.


티모시 페리스는 <나는 4시간만 일한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물어야 할 것은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나를 흥분시키는가?’이다. 기억하라. 우리의 적은 지루함이지 어떤 추상적 개념의 실패가 아니란 사실을."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느라 감각이 식어가는 순간을 방치한다.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 ‘좋은 연인’이라는 형식을 유지하려고 하는 동안, 정작 서로에게 여전히 설레는지 묻지 않는다.


결국 사랑을 위협하는 것은 큰 사건이 아니라, 평범한 날의 반복 속에서 서로에게 질문을 멈추는 태도다. 대화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여기는 순간, 더 묻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관계는 조용히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와 지루함에 잠식되지 않으려는 결심을 동시에 붙들어야 한다. 슬픔을 인정하되 무관심에 머물지 않는 태도, 침묵이 길어질수록 더 많이 말하고 관심을 가지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나는 오늘도 사랑으로 시작된 관계가 왜 무너지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사랑을 지킨다는 것은 거창한 맹세가 아니라, 무뎌지지 않으려 애쓰는 노력이며 식어가는 감각을 깨우기 위해 먼저 말을 건네는 용기라는 것을. 관계가 흔들릴 때 마음 한편이 허전해지는 이유도, 어쩌면 끝이 아니라 아직 완전히 무관심해지지 않았다는 신호이며, 다시 느끼고 다시 묻고 다시 말하라는 삶의 조용한 요청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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