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저는 <Love the Way You Lie>를 자주 들었습니다. Eminem의 거칠고 날 선 랩과 Rihanna의 절제된 후렴이 교차하는 이 곡은 처음에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반복해 들을수록 서로 다른 결의 목소리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묘한 긴장과 균형이 의외로 단단하게 맞물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Skylar Grey가 피아노로 다시 불러낸 리메이크 버전을 들으면서는, 같은 멜로디가 목소리에 따라 전혀 다른 색깔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반주가 거의 비어 있을수록 인간의 목소리는 더욱 또렷해지고, 감정은 한층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곡을 통해 저는 혼자서 완성할 수 있는 일은 드물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랩만으로는 곡이 지나치게 거칠어지고, 후렴만으로는 긴장이 사라집니다. 서로 다른 음색이 맞물릴 때 비로소 하나의 음악이 완성됩니다.
그것은 음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의 목소리를 내지만 결국 타인의 목소리와 부딪히고, 때로는 기대어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독립된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화음 속에 서 있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어떤 태도를 지켜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자존심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한 자긍에 가까운 것이었고,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는 정갈함이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흔들릴 때에도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정신이 있다는 생각이 제 안에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아도, 지켜내야 할 것은 결국 그 태도와 정신 자체였다는 사실을 다시 분명히 새기고 있습니다.
이 노래를 유난히 좋아했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격렬한 감정이 오가지만, 그 안에는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어떤 의지가 있습니다.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다시 끌어당기는 힘, 부정하면서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머뭇거림이 교차합니다. 저는 그 복잡한 구조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모순적인 존재인지, 그리고 그 모순을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의 저는 거창한 성취보다 작은 조화를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만났을 때, 우연히 흘러나온 음악이 하루의 리듬을 바꾸어 놓을 때, 저녁 공기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 그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큰 확신 대신 조용한 만족을 선택하는 일, 그것이 오히려 삶을 오래 지탱해 주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Love the Way You Lie>는 여전히 제 플레이리스트에 남아 있습니다. 예전처럼 자주 반복해 듣지는 않지만, 가끔 다시 재생하면 그 시절로 돌아가 그때의 저를 떠올립니다. 힘들었던 그 시절, 그러나 참아냈기에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그때 저를 지탱했던 여러 이유 가운데, 이 음악 역시 분명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완전한 독주는 드물고, 대부분의 삶은 누군가의 피처링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겸손해지고, 동시에 조금 더 자유로워집니다.
음악이 제게 가르쳐 준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삶의 부조리를 견디는 태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속에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음색을 잃지 않으려는 자긍심, 아마도 그것이 지금까지 제가 붙들고 있는 가장 단순하고도 단단한 원칙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