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의 끝, 세상이 갑자기 멈춘 듯 고요해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사람이 드물었고, 우리는 서로를 향해 한 발 물러선 채 각자의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듯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자주 들었습니다. 특히 곡이 시작되기 직전의 숨 같은 정적을 좋아했습니다. 소리가 나기 전의 그 여백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병과 싸우는 시간 속에서도 끝내 창작을 멈추지 않았고, 죽음을 눈앞에 둔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지요.
"나는 힘든 순간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그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중요한 순간에는 대개 어려운 쪽을 선택해 왔지요. 나는 절대적으로 만족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드뷔시나 바흐를 들어도, 곡을 직접 만들어도 마찬가지지요. 만족할 수 없어서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요. 만족해 버리면 다음은 없기 때문이지요."
그때의 저는 이 말을 ‘도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견디면 반드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으리라 믿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불안을 이겨내기 위한 다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저는 그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합니다. 어려운 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거창한 결단이라기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일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고요. 포기하지 않고, 아주 사소한 몸짓이라도 꾸준히 이어가는 태도. 만족하지 못해도 멈추지 않는 집념.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불완전한 상태로 계속 살아가는 자세.
그 시절 저는 제게 더 단단해지기를 요구했습니다.
흔들리지 말 것, 불안해하지 말 것, 상황을 통제할 것.
지금 생각하면,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짊어지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지치고, 더 예민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완벽하지 않습니다. 위기는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고, 속도는 더 빨라졌습니다. 그러나 한 번 거대한 시간을 통과하고 나니, 저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삶의 여백일 것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모든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잠시 고요히 머무르는 시간. 타인을 향해서는 조금 더 여유 있는 판단과 작은 배려. 그리고 나 자신에게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정.
류이치 사카모토가 끝까지 음악을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아주 작은 무언가를 계속해 나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거창한 도약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오늘이 힘들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건너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쩌면 인내나 믿음이라는 말보다,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이어가는 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