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Jun 25. 2022

습관을 통해 성취한 최선


주말이 다가오면 주말이 길 것 같지만, 막상 보내고 나면 잠깐이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우리 인생도 긴 것 같지만, 모든 것이 지나고 나면 한순간에 불과하다. 허무하다고? 그렇다. 인생이 허무하기 때문에 우리는 허무하지 않는 어떤 것을 찾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인생이다.


지난 6월 초 연휴, 현충일까지 포함하면 3일을 쉴 수 있었다. 금요일 저녁, 3일이나 주어졌으니 뭔가 해야지, 밤늦은 시간까지 고민하다가 여행을 가볼까, 하는 마음에 기차표를 검색했다. 부산행 KTX, SRT 전석 매진! 이런, 좀 더 빨리 결정해서 표를 예매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오랜만에 부산에 가서 예전에 살던 곳이나 그때 걸었던 곳을 다시 한번 걸어보려고 했는데, 아쉬웠다. 다음 기회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뭘 할지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하고, 3일째를 맞고 말았다. 그렇다고 허튼 시간을 보낸 건 아니다. 하긴,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낸 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천성적으로 그렇게는 살지 못한다. 비록 별거 아니라고 해도 꼭 뭔가를 해야 제대로 시간을 보낸 것 같았으니까.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별게 없었다. 평소보다 좀 더 많이 걸었다는 것과 책을 좀 더 읽었다는 정도. 가끔은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살다가 나중에 정말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더 나이가 들면 어디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여행을 못 가는 대신 많이 걸었다. 6월 4일 토요일엔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애플 워치에서 '평소와 달리 엄청난 기록을 세우셨군요. 계속 이렇게 하시면 놀라운 결과를 얻으실 거예요."라는 음성이 들렸다. 아, 내가 그렇게 많이 걸었나 하고 확인해 보니 19.8킬로미터를 걸었던 거다.


하긴 아침 일찍 걸었고, 그 길을 밤에 다시 걸었으니. 거기다가 낮에 동네 주변을 어슬렁거린 것까지 포함하면 운동량이 엄청났던 거다. 그래서 그런지 밤에 뻗고 말았다. 새벽에 보통 잠에서 깨는데 어제는 그 시간을 넘어서까지 잤다.


어차피 부산에 가서도 걸으려고 했던 거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번 연휴는 기록이나 깨 보자 하는 마음으로 걷고 또 걸었다. 이제 '시리'도 더 이상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그 친구도 바쁜 걸까? AI인 시리가 내 행동반경을 체크하고 운동량이 얼마인지 알려주고, 더 나아가 격려? 까지 해주니 어떤 때는 시리가 마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연인 같다.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영화 <Her, 2013>에 나오는 AI 운영체제인 '사만다'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러고 보니 그 영화 리뷰를 쓴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쓰지 못하고 있다. 이 게으름이라니, 어떤 면에서는 부지런한데, 또 어떤 면에서는 게으르다. 이것도 고쳐야 할 단점인데.

많은 시간을 걷고 또 걸었던 이유가 또 있다. 걸으면서 마음속에 남아 있던 미련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던 것, 걸었던 거리만큼 그 감정들과 거리를 두려고 했던 셈이다. 역시 사람은 힘이 빠져야 욕망과 집착이 사라지는가 보다. 열심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나를 힘들게 하던 문제들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쓸데없이 집착했던 내 욕심'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주말이든 연휴든 자칫 어엉 부영 보내면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많은 시간이 주어졌지만 막상 아무 시간도 얻은 것이 없게 되는 거다. 그래서 나만의 주말을 잘 보내는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게 이렇다.


그 연휴 기간 나는 평소와 비슷하게 일어났다. 그동안 출근 때문에 하지 못했던 아침 조깅을 했고, 오전에 글을 썼다. 그리고 평소보다 책을 더 읽었다. 이것만 해도 사실 많은 것을 한 거다. 이런 비슷한 것을 찾아서 하다 보면 그 이후 특별히 대단한 걸 안 해도 뭔가 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멋진 곳을 여행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짜릿한 시간을 보내는 것만 연휴를 잘 보낸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나만의 소소한 것들을 쌓아가다 보면 더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연휴를 잘 보낸 셈이다. 지금도 이 글을 조깅하고 돌아와 쓰고 있는데, 비록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나만의 성취감을 맛보고 있는 중이다. 좋아하는 음악까지 들으면 금상첨화! 한 번 해 보시기를, 그래서 언제가 또 다가올 연휴를 자신만의 시간으로 채울 수 있기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이 쌓여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나중에 더 큰 성취를 가져온다. 진정한 성취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매일매일의 삶 속에 있다. 배철현 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또한 그의 칼럼 '[배철현의 정적(靜寂)] 침묵(沈默)'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최고의 덕을 그리스어로 ‘아레테’ 즉 ‘탁월함’이라고 불렀다. 그는 탁월함을 ‘훈련과 습관을 통해 성취한 최선’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그 사람이 자주 하는 그것이다. 내가 자주 읽은 책은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은 나와 비슷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게 탁월함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습관이다. 그가 처한 환경은 그의 습관이 지은 집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환경과 운명을 원망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말을 살펴 매일매일 개선하는 훈련생이다."


작가의 이전글 속도의 강박에서 벗어나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