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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09. 2022

먼저 삶이 존엄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베 신조의 죽음


어제 오후 늦게 일본의 전 총리 아베 신조(68)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총리에서 물러나 일본은 몰라도 우리에겐 다소 잊힌 인물, 그가 유세 도중 갑작스럽게 피격을 당한 것이다. 그의 죽음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인을 애도하는 마음은 정치적 성향을 떠나 고인과 유족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그 뉴스를 접하고 들었던 생각, 인생의 덧없음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문제, 그러나 언젠가는 내 일이 될 수밖에 없는 문제, 바로 죽음이다. 수명을 다하고 죽을 수도 있고, 아베처럼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 죽는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죽음에도 질이 있다면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내가 들었던 생각은 저렇게 갑자기 죽는 게 나을까 아니면 죽음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가 죽는 것이 좋을까였다.


사고로 죽으면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느낄 겨를이 없을 것 같다. 순간적으로 죽기 때문이다. 늙어서 또는 지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어떨까. 곧 내가 죽는다는 것이 예상된다면 어떤 마음과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아마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서 후회와 미련, 해야 하지만 하지 못했던 일 등을 떠올릴 것 같다. ‘그때 이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좀 더 잘해줄걸~’ 문제는 그런 마음의 준비가 없이 갑작스럽게 죽는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이나 친척 그리고 친구 등 지인 등에게 안부를 묻지도 못한다면, 그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다면 마음이 어떨까. 나는 아베가 측은하게 여겨졌다. 사망하기 10분 전에 이제는 미망인이 된 배우자를 만났다고 하지만, 그때 그에게 그녀를 알아볼 의식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는 사랑하는, 어쩌면 사랑했던 배우자도 못 보고 간 셈이다. 아침에 집에서 나갈 때 배우자에게 했던 말이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말았다. 저렇게 갑작스럽게 죽는 건 좋지 않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죽음의 순간을 선택할 수 없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사고로 죽을지, 아니면 수명이 다해서 죽을지 알 수 없다. 하여,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과 해결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해야 하고, 챙겨야 할 사람들도 챙겨두어야 한다. 문제는 이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거다.


젊을 때는 마치 영원히 살 것 같아서 죽음은 나와는 무관하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서도 조금 의식할지는 몰라도 바쁜 일상에 묻혀 죽음을 잊고 산다. 그러다 불현듯 다가온 죽음 앞에 당황하게 되고, 준비가 안 된 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복일 지도 모르겠다.


한편 죽은 자는 일정 기간 살아나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살아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인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는다는 말이다. 평소에는 별로 관심도 없던 사람인데, 죽으면 갑자기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 삶의 행적이 미화되기도 하고. 유명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기간 역시 지극히 짧다. 장례를 치르고 나면 곧 다시 잊힌다. 잊혀지는 존재,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해도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영원한 침묵, 그리고 망각...


날씨도 더운데, 너무 심각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아름다운 죽음>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죽음을 앞둔 순간,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때도 지금처럼 지나온 세월을 후회하고 아쉬워할까. 아니면 찰스 핸디처럼 지나온 세월에 대해 감사하고 조용히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까. 그건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사느냐에 달린 문제다.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이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을 수 있을까.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말했다. "잘 보낸 하루 후에 편안한 잠이 찾아오듯, 잘 보낸 삶 후에는 차분한 죽음이 찾아온다." 죽음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삶과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이 시간까지도.





만약 당신이 존엄한 죽음을 원한다면,

먼저 삶이 존엄해야 하지 않겠는가.


<게랄트 휘터 _ 존엄하게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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