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미명,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매미가 우는 소리였다. 시계를 보니 5시. 어젯밤에도 12시 넘어 자서 피곤이 여전했다. 이젠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에 선잠 상태였으니 꼭 매미 탓만은 아니지만, 매미 소리가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 다시 성하盛夏의 계절이 왔구나. 너희들도 본능에 따라 사는 것일 테니 내 잠을 설친 것을 너희들에게 뭐라고 하기 그렇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미들은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다가 꼭 이맘때만 되면 나타나는 걸까. 계절의 순환만큼이나 매미들도 계절의 변화를 정확히 아는 것 같다. 무엇보다 부지런하다. 새벽부터 울어대니.
그런데 나는? 매미만큼 이 계절을 성실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마음이 복잡해졌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날들, 사는 것 자체에 기쁨이나 희망이 없어진 요즘, 돌이켜보니 지난 시절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 급급했을 뿐, 다가올 시간을 조망해 보거나 지나간 세월에서 어떤 깨우침을 얻지 못했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공허함만 남았다. 잠시 시간이 나는 주말이 되면, 오늘은 뭘 하나 하는 답답함에 한숨이 나오기도 했으니, 나는 매미의 성실한 자세에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매미 소리가 왜 귀에 거슬렸을까. 정신을 차리고 음악을 틀었더니 레기나 스펙토르(Regina Spector)의 <us>가 흘러나온다. 귀에 익은 곡, 좋다. 아, 그렇구나. 소리는 때에 따라 소음이 되기도 하고, 음악이 되기도 하는 거였다. 내가 어떤 마음 상태에 있는지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마 매미 소리를 어디 시원한 카페에 앉아 한가로운 가운데 들었으면 여름을 알리는 낭만적인 소리로 느꼈을지 모른다. 하여, 모든 것은 마음 상태에 달린 거다. 잠이 덜 깨서 피곤한 탓에 들어서 짜증이 난 거니 매미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 주변이 시끄럽다고 탓하기 전에 내 마음 상태부터 점검하고 볼 일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레기나 스펙토르(Реги́нa Спе́ктор)는 러시아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겸 피아니스트로, 6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배운 실력 있는 아티스트다. 9살 무렵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고, 미국에서도 클래식 피아노를 계속해서 배우며 자작곡도 써나갔다.
세 개의 자작 앨범으로 뉴욕 인디 음악계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2006년 네 번째 앨범 ‘Begin to Hope’로 골드 판매 인증을 받기도 했다.
오늘 소개하는 <Us>는 2009년에 개봉한 영화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의 OST이기도 하다. 나도 그 영화를 통해 이 곡을 알게 됐다. 특이한 보컬에 영화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에선 썸머와 톰이 끝내 헤어지지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때는 썸머를 너무나 사랑했던 톰이 불쌍했다. 그래서 썸머가 좀 별로였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를 탓할 수만도 없을 것 같다. 각자 상황이 있는 거고, 만나다 보면 인연이 아닐 수도 있는 거니까.
우리는 카뮈의 조언대로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가벼운 어조로 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표현은 신뢰를 떨어뜨릴 뿐, 때로 가볍고 심플한 표현이 그 사람에 대한 내 사랑을 더 정확히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헤어질 때도 마찬가지다. 미련과 아쉬움은 마음으로만 간직해야 한다.
그건 그렇고 영화에 나오는 '더 스미스(The Smiths)'의 곡들도 좋다. 톰과 썸머를 연결시켜 주었던 곡이기도 하고. 오래된 곡이지만 지금 들어도 감각적이다.
그녀의 다른 곡을 하나 더 소개한다. <Fidelity> 애플 뮤직은 이 곡을 <Us>보다 최상위에 올려놓았다. 마치 그녀의 대표곡이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나도 동감한다.
그리하여 아마도 나는 여기서 비로소
일체의 아이러니를 그만두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뭐니뭐니해도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그것에 대하여 가벼운 어조로 말하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 _ 결혼,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