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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07. 2022

반복 속에서 삶은 전진한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나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이해했다. 


아름다움과 시간은 상호보완적이었다. 

곧 사라질 것이 아니라면 아름답지 않다. 

한편으로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없다.


<김연수 _ 지지 않는다는 말>

아침부터 온도는 30도를 훌쩍 넘었다. 불쾌지수는 덩달아 상승하고, 새벽녘에 잠에서 깼다. 방안에 더운 열기가 느껴졌다. 에어컨을 밤새 틀어놓을까도 했지만, 자다가 추울 것 같아서 시간 예약을 하고 잤던 것이 화근이었다. 맞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밤새 켜놓았어야 했던 거다. 에어컨을 켜고 다시 누웠지만 한번 깬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벌써 8월, 새해 첫날의 다짐은 이미 흐릿해졌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의욕을 잃어버리기 쉽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쉽게 지친다. 삶의 가장 치명적인 독은 반복으로 인한 무료함과 피곤함이다. 정신적으로 지치는 게 몸이 피곤한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 지금 내가 그렇다.


지난 주말, 무력감에 빠졌다. 무엇보다 몸에 기운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눕게 된다. 더위 탓만은 아니다. 혹시 코로나 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아닌지 자가 검사를 해봤지만 음성인 것으로 봐서 그건 것 같지도 않다. 하긴, 오미크론이 다시 유행한다고 해서 특별히 누굴 만나거나 모임을 가진 적이 없었으니, 감염될 이유가 없었다. 몸살인가? 뚜렷한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사무실에 있어도 머리가 멍했다. 더워서 그런지 밖에 잘 나가지 않게 되고, 그 시간만큼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서 그런지 더 쳐지는 것 같았다. 사무실을 이리저리 걸어보기도 하고, 책을 펼쳐보지만 컨디션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격렬한 운동을 하면 나아질까. 재밌는 영화를 보면? 생각해 보니 뭘 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뭘 하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고, 눈앞에 둔 시선을 좀 더 멀리 볼 수 있도록 시선을 바꾸자고. 매 순간 반복되는 일이지만 마치 새로운 일을 하는 것처럼 해보자고.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애썼다. 


우리는 매일 같은 생활을 반복한다.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고, 씻어야 하고, 각자 정해진 직장으로 출근해야 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일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자칫 무료하거나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나를 잃어버리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 때일수록, 그런 마음이 들수록 의도적으로 시선을 바꿔 의미를 찾고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해가야 한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을 봐야 하고 그곳으로 왜 내 시선을 돌려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하루하루가 은혜로운 선물이 될 수도 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반복은 지겹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린 그 지겨운 반복을 통해 거듭난다. 관건은 '어떤 자세로 반복할 것인가'이다. 일본 정신과 의사 가바사와 시온은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아무리 소소해도 괜찮으니 뭐든 일단 행동하라'고 조언한다. 아침 산책 15분, 하루 수면 7시간, 몸풀기 운동 10분, 잠들기 직전 세 줄 긍정 일기 쓰기 등의 소소한 행동을 실천한다면 스트레스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복이 힘이다.


진정한 프로는 어떤 일을 하든, 자기가 하는 일에 철학을 담는 사람이다. 반복으로 인해 그 일을 잘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감동을 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의미'이고, 삶과 일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나름의 '철학'이다. 얼마 전 작고한 이어령 선생의 말도 다르지 않다. 입추가 지났으니 곧 가을이 올텐데, 마음도 가을 기운에 실려온 공기처럼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새는 날개깃을 똑같이 상하로 움직인다. 

그 동작의 반복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 날개깃을 파닥일 때 새는 앞으로 비상한다. 

인생의 의미 또한 이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과거와 현존의 뒤바뀜, 

그 반복 속에서 삶은 전진하고 인생은 비약한다. 


<이어령, 1934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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