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중요한 건 다시 하는 거야

by 서영수

지난 8월 마지막 날, 원래 글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8월의 마지막 날이다 보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뭔가 매듭을 짓는 게 필요했다. 헝클어졌던 지난 몇 개월의 내 삶을 돌아볼 필요도 있었고. 이제 그만 산다면 모를까, 앞으로 계속 살아야 한다면 삶의 순간순간 뭔가 정리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벌써 1년 중에 8개월이 지났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1년으로 따지면 4개월 정도가 남은 셈이다. 세월이 빠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난 시간을 생각해 보니 딱히 뭔가를 한 것 같지 않다. 나는 그대로인데 시간만 흘렀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더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뉴스에는 거기서 거기인 소식들로 가득 차 있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관심사는 비슷하고,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들보다는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현실. 주변 사람들은 코로나19, 오미크론에 감염되어 자가 격리 중이고. 실망과 아쉬움으로 가득 찬 우리 인생,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고.


사는 게 다 그런 거지,라고 생각하면서 넘길 수도 있다. 정말 사는 게 그런 걸까? 비슷비슷한 날들, 매일 만나는 똑같은 사람들, 틀에 박힌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시간과 상황에 매몰되어 '나'를 잊어버리고 만다. 세상에는 나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밖에 없는데도, 비슷비슷한 생활과 관심사 속에서 비슷한 사람들이 만들어지고 마는 거다.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가 이미 우리에게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해가 바뀌면 뭔가 새로운 결심도 하고 그러는데 달이 바뀌어도 그러려니 한다. 그렇게 흘려보낸 날들이 얼마나 많은지. 세월에 무디어지면 그게 나이가 든 거라는데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다.

쓰다 보니 글이 다소 냉소적으로 흘렀고, 글도 길어졌다. 그동안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주저리주저리 긴 글을 쓴 것 같아 후회가 많았다. 그런데도 또 길어지고 있으니 역시 나는 안돼,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마음으로는 늘 삶을 긍정하고, 매사에 감사하고, 그렇게 좋게 생각하면서 살려고 했다. 그런데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는다.


어젯밤에 걷다 보니 공기에 향긋한 냄새가 묻어났다. 어, 무슨 냄새지?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건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들뿐. 자세히 살펴보니 잎이 무성한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였던 거다. 나무들에게도 푸르름을 자랑하기에 좋은 시절이었다. 그동안 별 관심 없이 대충 보고 살았던 것이 후회스러워졌다.


'미안해, 나무야. 그래도 나한테는 너밖에 없는데 내가 그동안 너를 자세히 봐주지 않았구나. 앞으로는 안 그럴게. 올해 남은 기간도 아름다운 꽃 많이 피우고 비바람에도 굴하지 말고 꿋꿋이 너답게, 네 모습 그대로 살아가렴. 그럼 나도 힘들 때 너를 보고 잘 견딜 수 있을 거야.' 나는 어느덧 속으로 나무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무더웠던 날씨도 한결 선선해졌다. 자연은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 어떻게 하면 세월을 아끼며 후회 없이 살 수 있을까, 8월을 보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서랍 속에 저장해 놓았던 이 글을 끄집어낸 이유기도 하다. 9월이 되었다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 것 같지 않지만. 혹시 전경린 작가의 이 글이 도움이 될지도.


“우린 무언가를 할 때마다 실패도 하고 상처도 입고 후회도 하지. 마음이 무너지기도 해. 하지만 중요한 건 다시 하는 거야. 그럴 때 난 쉬운 일만 해. 쉬운 일도 규칙적으로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힘이 생겨. 걱정 마. 곧 그렇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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