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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11. 2022

명절을 잘 보내는 방법

경청 / 대화

“그때 왜 그랬어? 그게 모두 너 때문이잖아.”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척들과 지난 일을 회상하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오기 쉽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이고 그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시간을 경험한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과거는 늘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었을 테니, 굳이 상대의 흠을 끄집어낼 필요가 없다. 화만 나고 관계만 틀어진다.


사람들이 모이면 연예인, 정치인 등 남 얘기를 하는 건 그나마 서로의 상처를 덜 건드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급적 화살이 상대를 향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끊고 자제하는 것, 지혜롭게 명절을 보내는 방법이다. 그렇다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불편해진다. 중간을 잘 선택해야 한다.


이번 추석에는 지나치게 사적인 것은 서로 묻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그런 질문을 안부라고 하고 더 나아가 관심이라고 말하지만, 관심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정도가 있다. 가족이라는 미명 하에 서로를 힘들게 한다면 정말 피곤한 일이다.


누구를 탓할 만큼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할 말이 없다면 굳이 억지로 할 필요도 없다. 어설프게 화제를 만들려다가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 왜 말이 없어? 반문하면 그냥 조용히 미소만 지어도 어색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상대의 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굳이 내 의견이랍시고 말을 꺼내 내 가치관을 그에게 강요하는 것보다는 낫다.


여유 없이, 각박하게 살았던 사람일수록 감정이 뾰족해져 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편하다는 생각에 뾰족해져 있는 감정이 말에 담겨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가급적 말을 아끼고 들어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명절은 루틴했던 내 삶의 리듬이 깨진다는 점에서, 자주 보지 않았던 가족들과 친척들을 만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이래저래 더 조심해야 하는 시간이다.

특히 연로한 부모님과 대화할 때 더 조심해야 한다. 부모님은 당신이 경험한 세상으로 자식을 판단한다. 이른바 '세대 차이.' 자식을 판단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대하면 좋지만, 그걸 기대할 수 없다. 자식이 있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자식은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한 어린아이의 모습이라는 것을. 부모님과 대화하다 보면 결국 잔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부모님에게 어떤 선물을 하는 것보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이지만 끝까지 듣고 존중해 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쉽지 않다. 훈계조의 말을 그것도 현실과 맞지 않는 말을 계속 듣고 있으면 마음에서 스멀스멀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윤대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같은 말을 했다. "추석 선물로 콘서트 티켓을 드렸더니 좋아하는 부모님의 경우 그 자녀는 효도를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효도보다 더 어려운 효도가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경청해 드리는 것이다. 속에서 저항이 생기고 화가 나지만 꾹 참고 경청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효이다."


추석 연휴, 안 그래도 복잡한 일들로 세상만사 다 귀찮은 데다가 각박한 현실로 마음의 여유도 사라진 지 오래, 불편한 마음으로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오랜만에 한 공간에 모이다 보면 불가피하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럴수록 의도적으로 따뜻하게 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방법 중에 하나는 먼저 판단하거나 말하지 않고 잘 듣고 말하는 상대의 입장에서 서보는 거다. '역지사지易地思之' 김혜남 정신과 의사의 이 조언처럼.


"경청이란, 모든 말을 다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것을 말한다. 즉 상대방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들어 있는 마음을 이해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진정한 경청의 힘은 진실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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