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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12. 2022

그때의 선택을 바꿀 수 없으니

지난 8월 하순 어느 주말 새벽, 더워서 깨보니 방 안의 온도가 벌써 30도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이래서 깬 거구나 했다. 에어컨을 켜고 다시 누웠지만 한 번 깬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침대에서 끝까지 버텼지만 점점 더 또렷해지는 정신,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평일에는 부족한 잠 때문에 좀 더 잤으면 하다가도, 막상 주말이나 휴일이 되면 더 자고 싶어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마치 청개구리를 닮은 것 같다. 원하는 것은 할 수 없고 원하지 않는 것은 해야만 하니,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인생이 주는 묘미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에는 마음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계획한 대로, 원하는 대로 됐던 적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되었다고 반드시 나한테 좋았던 것도 아니다. 뭐가 좋은지 나쁜지는 지나고 나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지금 일어나는 일에 너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라는 선인들의 말은 일면은 맞는 말이었다. 대개 그런 말은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로한 답시고 하는 말이지만. 




덥든 춥든 날씨를 비롯한 외부 환경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착각이다. 우리는 태풍 하나 막지 못하지 않은가. 무더위에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심지어 죽어나가도 선선한 바람 하나 불게 하지 못하지 않은가.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는다. 


태풍이 오면 온갖 걱정과 근심을 하다가도 지나가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 일 없이 살아간다. 잘못된 일들이 반복되는 것은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것도 원인이지만 우리의 망각하는 습성 탓도 크다. 기억해야 할 것은 잊고 잊어야 할 것은 여전히 기억 속에 붙들고 사는 것, 우리의 실상이다. 


지난 여름, 더위를 피해 시원한 카페에서 책을 읽었는데 책이 쉽게 읽히지 않아 난감했다. 어떤 이유로든 책을 읽겠다고 했으면 책을 잘 골라야 한다. 주말에는 다소 가볍게 읽을 수 있거나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전개되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한 번 손에 잡은 책은 지루하든 재미있든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잘못된 선택이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실패에서도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당장은 무용해 보이고 손해를 보는 일 같아도, 지나고 나면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해야겠지만 이왕 선택했으면 선택의 결과를 물 흐르듯 받아들여야 한다.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전 시간으로 돌아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나만 피곤해진다. 


아, 그런데 마음먹은 것처럼 잘 되지 않는다. 한 번뿐인 인생, 참 어렵다. 이런 사실을 깨달을 나이가 되면 점점 선택의 기회는 줄어들고, 애꿎은 세월 탓만 하게 된다. 오늘 내가 그랬다. 




"우리는 운명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긴다. 하지만 운명을 조종하는 건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아무리 끔찍한 비극과 맞닥뜨려도 우리는 그 비극에 걸려 넘어질지 아니면 넘어서서 앞으로 나아갈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영원히 오점으로 남을 결정이란 걸 알면서도 그대로 밀어붙이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사랑을 받아들일지 피할지도 선택할 수 있다. 


어쨌든 인생은 선택이다. 우리는 늘 자신이 선택한 시나리오로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고, 앞으로 전진해야 하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길지 않은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하고, 어느 정도는 뜻대로 완성해 가야 한다. 완성. 인생에서 '완성'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아니면 그저 잃어버린 것과 우연히 마주치는 게 인생의 전부일까?"


<더글라스 케네디 _ 모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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