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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16. 2022

그때로 돌아가 고칠 수 있다면

브런치를 하기 전에도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글을 포스팅하곤 했다. 브런치와 달리 트위터는 140자 안에서 써야 하는 제약이 있어 긴 글을 쓸 수 없다. 그리고 한 번 포스팅하면 아예 지울 수는 있어도 수정이 불가능했다.


가끔 포스팅한 글에 오타를 발견하고 난감할 때가 있었다. 언젠가 트위터에도 조만간 올린 글을 수정, 편집할 수 있는 기능이 생긴다는 기사를 보고, 진작에 왜 이런 기능을 도입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보니 실제로 고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동안 급하게 쓰느라 오타나 문맥이 이상한 부분이 있어도 고칠 수 없었는데, 나중에라도 수정할 수 있는 기능이 생긴다면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후 수정이 남용되면 최초 올린 글과 다른 뉘앙스의 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쓴 사람의 책임이니 뭐라고 할 수 없다. 모든 일에는 얼마간의 부작용은 있는 법이다.

트위터에 올린 글을 수정, 편집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과거로 돌아가 잘못된 부분을 고칠 수 있다면, 후회가 남거나 아쉬운 순간이 있었다면 편집해서 그럴듯하게 바꿀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아쉬움이었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인생은 한 번 지나가버리면 수정도 편집도 불가능하다. 과거를 바꿀 수 없으니 오직 반성하고 지금부터 잘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것 같지만, 삶은 어느 순간이든 1회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험상 과거를 곱씹는 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흘러간 건 흘러간 대로 두는 게, 어차피 다시 살 수도 없으니 그때의 경험을 살려 지금이라도 제대로 사는 게 최선의 삶은 아니더라도 그나마 차선이라도 된다.


과거를 고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지나간 시간을 회고하고 반성하는 사람일 게다. 사느라고 바쁘다는 이유로,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 과거를 돌아보기는커녕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물론 반성한다고 죽을 때까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고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는 인간적이다.


사는 건 어렵고 힘든 일의 연속이다. (아닌 사람도 있있겠지만 그 사람들도 말은 안 해서 그렇지 나름 말못할 고민이 다 있다.) 어차피 고칠 수 없다고 고치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갈수록 다른 사람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고집만 점점 세지고. 원하는 건 많으면서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건 무시하고. 그런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걸 나는 부인할 수 없다.


사진은 벚꽃이 한창일 때 찍었다. 지난 봄, 벚나무가 있는 곳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 나도 그들 옆에서 오늘은 그 벚꽃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었다. 무엇이든, 내 마음에 담아 놓는 것이 영원한 거니까. 그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벚꽃도 곧 질 텐데, 그렇게 봄날은 가고 있다. 나의 한 시절도 가고 있고.





이 슬픔의 정체는 뭘까.

혼자만의 여행이 안겨주는 부산물, 마음의 노독?

좋아도 좋은 줄 모르고 살았던 날들에 대해 반성하라는 신의 계시?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말 그대로 잡념?

분석인지 합리화인지 모를 생각을 하며 언덕 아래로 내려왔다.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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