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온도는 30도를 훌쩍 넘었다. 습도까지 높아 불쾌지수도 덩달아 상승하고, 잠에서 깨보니 방안에 더운 열기가 느껴졌다. 에어컨을 밤새 틀어놓을까도 했지만, 자다가 추울 것 같아서 시간 예약을 하고 잤던 것이 화근이었다. 맞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밤새 켜놓았어야 했던 거다.
에어컨을 켜고 다시 누웠지만 한 번 깬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자려고 침대에 꼭 붙어 있었지만 더욱더 또렷해지는 정신, 일어나기에는 아직 밖은 어두웠다. 평일에는 잠이 부족해서 더 잤으면 하는데, 주말에는 더 자고 싶어도 더 자지지 않는다. 이런 아니러니가 또 있을까. 마치 청개구리를 닮은 것 같다.
인생도 그렇다. 원하는 것은 얻을 수 없고 원하지 않는 것은 쉽게 얻어지니, 예측 불가능한 게 인생이다. 어쩌면 그게 인생이 주는 묘미일 수도 있다. 계획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반드시 나한테 좋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뭐가 좋은지 나쁜지는 지나고 나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지금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다. 말은 쉽게 하지만 이렇게 마음먹으려면 많은 내공이 쌓여야 한다. 나도 아직 한참 멀었다.
더운 날은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시원한 카페에서 책을 읽던지, 음악을 듣는 게 그나마 차선은 되는 것 같다. 카페에 오래 앉아 있으면 좀이 쑤시기도 하지만, 어딜 가든 덥기 때문에 그나마 그게 낫다는 말이다.
혹시 독서를 하려면 책을 잘 골라야 한다. 무거운 것보다는 다소 가볍게 읽을 수 있거나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전개되는, 즉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만한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안 그러면 더운데 더 짜증이 날지도 모른다.
음악은 다르다. 통상 길어도 3분 남짓이고 듣다가 별로면 안 들으면 그만이다. 최근에 나온 '플로어(flor)'의 신곡 <Play Along> 밴드 이름이 flor 소문자로 되어 있다. 일부러 그렇게 지은 것 같은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이 곡은 듣는 순간, 바로 좋아졌다. 무한 반복!! 좋았던 순간도 이 곡처럼 반복해서 경험할 수 있으면, 과거로 돌아가 좋았던 시절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무엇이나 내 곁에 늘 있는 것은 아니다. 때가 되면 나를 떠나거나 어느 순간 빛처럼 사라진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일 게다. 슬픔이나 아픔도 그렇다. 그때는 그게 전부인 것 같지만, 시간이 차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 곁을 떠난다. 잊히는 것이다. 무뎌지는 것일 수도 있고.
가끔은 그런 헤어짐과 떠남이 서글퍼진다. 그게 나를 힘들게 했던 아픔이었다고 해도. 자꾸 삶에 무뎌지는 것 같아 그런 내가 싫었다.
"한 미국 사내가 연인 곁을 떠난다. 그는 줄곧 그녀를 생각하면서 도시들을 지나간다. 한 도시, 또 한 도시...만약 우리가 그런 식으로 사태를 뒤로 하고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슬픔을 그런 식으로 지나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즈오 이시구로 _ 녹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