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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03. 2022

믿고 단호하게

다자이 오사무 / 우라시마 씨

벌써 지난달의 일이 되어버렸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8월이 끝나가는 날, 마치 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비는 하루 종일 이어졌다. 퇴근 무렵, 비도 오고 집에 가도 평소 가던 길을 걷기 어려울 것 같아서 코엑스를 걸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비가 와서 그런지 평소와 달리 몰은 한적했다. 1층에서는 새로운 전시회 준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얼마 전까지 전시했던 시설물이미 철거되고 없었다. 인부들만이 분주히 움직이는  공간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갑자기 허무하고 헛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짓고 허물고 다시 짓고 허물고 반복되는 일상, 우리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길을 걸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명인 나도 언젠가 그들처럼 이곳을 다시 걷지 못할 날이 올지 모른다. 씁쓸해졌다.


붐비던 낮 시간이 지나 저녁이 오면 인적이 드물어지듯, 삶의 절정기를 지나 나이가 들면 한가로워질지도, 어쩌면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 한가로움 때문에 삶이 지겨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하면서 남은 시간들을 채워가고 있을까.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딱히 그때가 되어도 특별히 뭘 하고 싶은 게 없을 것 같았다. 별다른 준비가 없었던 탓에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아마 난감해할지도 모른다.


지금 인생의 한창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알까. 삶이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하긴 모르는  나을 수도 있겠다. 알면     있겠는가. 미리 안다고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시계를 보니 어느덧 8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집에  시간이었다.


서둘러 코엑스를 벗어나 사무실로 향했다. 비 때문에 시야가 잔뜩 흐렸다. 흐린 날은 해를 볼 수 없다. 그렇다고 해가 없는 것도 아닌데, 우리 눈에만 보이지 않는 것인데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한다. 태양만 그렇지는 않을 거다. 그렇게 놓치고 사는 것이 얼마나 많을지. 자꾸 그게 마음에 걸려 내가 온 길을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아침에 읽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우라시마 씨>에 나오는 글을 떠올렸다. "의심하면서 시험 삼아 오른쪽으로 꺾는 것이나, 믿고 단호하게 오른쪽으로 꺾는 것이나, 그 운명은 똑같습니다." 내 의지로 방향을 정하든 아니면 타의에 의해 방향이 정해지든 가야 할 운명이면 가야 한다. 이왕 가기로 한 거면, 아니 가야 한다면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그 끝이 허무함으로 끝나더라도 계속 가야 한다. '믿고 단호하게'







#다자이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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