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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17. 2022

본질은 알 수 없으나

어느 박물관의 지하 / Marc-Antoiane Mathieu

"이 무한한 세계가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건 본질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같아요."


"본질적인 것이 존재하지만 거기에 도달할 수는 없다... 이건가?"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도달할 수 없는 것에 이르는 길은 본질적인 것이죠."



<Marc-Antoiane Mathieu _ 어느 박물관의 지하>

그래픽 소설, 루브르 만화 컬렉션의 두 번째 책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의 <어느 박물관의 지하> 이름조차 규정되지 않은 거대한 박물관의 측량과 감정을 맡은 주인공. 주인공에게 맡겨진 측량과 감정 또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그 누구도 파악하지 못한 실체에 접근하는 작업이었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그들은 그 과정에서 박물관에 소장된 예술 작품을 접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도 무한한 무언가가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깨달을 수 있을까,부터 도대체 무한한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가, 까지 생각이 복잡해지고 만다.


우리는 시공간의 제한을 받는 혈과 육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에 무한을 볼 수 없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가 알 수 없는 무한의 세계는 분명 존재한다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그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내가 내린 결론이라면 결론이다.


본질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도달할 수 없음에도 끊임없이 시도하는 과정(노력) 자체가 우리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책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결론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결론이다. 본질은 알 수 없으나 그에 이르는 길은 우리가 모를 뿐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방황할 수밖에 없다. 노력하는 한.


그러나 알 수 없다고 노력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에게는 이 책의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사랑할 때는 사랑이 뭔지 모르듯, 삶을 살아갈 때는 삶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나중에 죽을 때가 가까웠을 무렵, 어렴풋이 다가오는 뭔가가 있을지도, 그것도 노력했던 자에게 잠시 비치는 빛이겠지만.

여전히 더운 날들, 이 계절의 주인인 신록(新綠)의 아름다움을, 무엇보다 꽃이 피고 지는 순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사진으로 아무리 남겨도 사진이 되는 순간 본질은 사라지고 마는 것을. 그들처럼 오직 현재를 통과할 뿐. 그렇게 사라지는 것일 뿐. 그게 어쩌면 이 가을의 본질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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