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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23. 2022

너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LANY / YOU

태풍이 지나가고 다시 청명해진 날씨, 어제도 아침부터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지난주 며칠 후덥지근한 날이 계속되었지만 이제는 그날들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지난여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나가면 잊는 것, 우리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졌다. 날씨가 좋아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음악을 들으며 평소 걷던 코엑스 주변을 걸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마음에 드는 곡이 없어서 그런지 딱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 때가 있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때, 내 노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거나 나도 내 마음을 정확히 모를 때, 무언가를 결심하고 행동에 옮겼지만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자신이 없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긴, 우리가 하는 선택이 최선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이 하는 선택이니 그 순간 최선이었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나중에 최선이 아니었다고 밝혀져도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후회는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거니까. 

Lany를 알게 된 건 벌써 오래전 일이다. 이들은 미국 인디 팝 밴드로 2014년 미국에서 결성되었다. 밴드명은 로스앤젤레스의 LA와 뉴욕의 NY의 약자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리드보컬인 폴 제이슨 클라인(Paul Jason Klein)은 프라다 톱모델 출신, 한마디로 잘 생기고 노래도 잘한다는 말이다. 


Lany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강한 베이스 사운드를 즐겨 사용한다. 리드보컬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베이스 사운드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듣기 편하다. 오늘 소개하는 곡은 비교적 최근에 발매된 you!라는 곡, 처음 부분만 들어도 Lany의 곡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음악적인 색깔이 그대로 담겨 있다. 


가사 중에 반복되는 부분은 '너는 (달에 대한) 태양, 너는 어둠 속의 빛, 너는 내 심장을 관통한 화살, 그래서 너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부분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말이다. 통속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건 사랑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푸념에 불과하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향기와 같은 것은 한낱 허상이 아니던가.  


그런데 잠시 옷에 향이 스며들게 한 것인 줄 알면서도

매혹적인 향기에는 꼭 가슴이 두근거리는 법이다. 


<츠레즈레 구사(徒然草) _ 요시다 겐코>




오늘 인용한 '츠레즈레 구사(徒然草)', 즉 '무료함(徒然)의 수상록(草)'은 수필집으로 승려 요시다 겐코(吉全兼好)에 의해 1331년 경에 쓰였다. 솔직하고 그래서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책이다. 


오늘은 하늘도 맑고, Lany의 음악도 맑고, 요시다 겐코의 글도 맑다. 나만 맑으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결정적인 것은 내가 맑지 못하다는 거다. 앞으로도 여전히 완벽하기 어려울 것 같다. 


겐코의 말대로 언젠가 내게도 잠시 스며든 향기가 있었다. 향기였으니 영원할 수 없고, 곧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러나 곧 사라질 허상이면 어떤가. 한때나마 그 향기에 취해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그걸로 충분한 것을. 아쉬운 건 점점 그 향기가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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