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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10. 2022

존엄하게 산다는 것은

게랄드 휘터 / 존엄하게 산다는 것

수백 명이 모인 강의실에서, 한 과학자가 패널로 참여한 CEO를 향해 대뜸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에게 아주 큰 이익을 얻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기회가 당신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과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딜레마에 빠진 CEO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 기업의 대표로서 이익을 포기한다고 할 수도, 그렇다고 개인의 존엄을 포기하겠다고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과연 그 CEO와 달리 주저하지 않고 존엄을 택하겠다고 답할 수 있었을까?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부와 명성을 얻는 것만이 성공한 삶으로 인정되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선택인지 깊이 공감하게 된다.

독일 출신 신경생물학자인 게랄트 휘터(Gerald Huither) 교수는 그의 저서 <존엄하게 산다는 것>을 통해 이렇게 묻는다. 과연 우리의 삶은 존엄한가? 그는 말한다. "존엄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다."


나는 나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찾고 있는가. 그러려면 도대체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한다. 가치와 의미는 사람마다, 사회마다 다르다. 무엇을 지향하는지, 어떤 목표를 정하는가에 따라 가치와 의미가 결정된다. 물질만능의 시대, 1등만이 살아남는 성과주의 사회에선 가치와 의미가 경제적인 부, 명예가 될 수밖에 없다. 


휘터 교수가 말하는 존엄하게 되는 가치와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이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존중받는 사회, 각자의 삶이 그 자체로 존중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크게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스스로를,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존중하고 있는가? 되물으면 된다. 


나는 나를 존중하고 있는가? 선뜻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니 다른 사람도 제대로 존중하기 어렵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그들이 존엄한 인간으로 대우받으며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미안하고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면 힘들어진다. 내가 나 자신에게 자주 절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은 내 고백이다. 물론 바울이 말하는 '약함'과는 다른 차원의 약함이지만. 


저자는 더 큰 이익을 위해 개인의 존엄을 무시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나는 내 안에 여러 이익이 충돌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자문하고 있다. 내 존엄성이 무너지면 다른 것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게랄트 휘터 교수의 조언이다. 


"우리 안에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무언가를 찾아낸다는 것, 그것이 바로 21세기의 가장 시급한 과제다. 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존엄함 속에 살아가는 사람. 방향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 이처럼 자기 존엄성을 인식하는 일은 자유를 향한 첫 번째 단계이자, 자립을 위한 제1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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