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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12. 2022

한 송이 꽃의 기적을 볼 수 있다면

마르셀 프루스트

요즘도 그 꽃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을 처음으로 봤던 나이와 마음을 되찾는다. 멀리 울타리 너머로 그 꽃의 하얗고 투명한 베일이 얼핏 보이면, 그 시절 어린아이였던 내가 되살아난다. 


다른 꽃들이 내 안에서 일으켰던 약하고 벌거벗은 느낌이, 어떤 대연회에서 지친 목소리의 늙은 테너가 옛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를 지탱해 주고 풍부하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합창단원들의 산뜻한 목소리처럼, 더 오래된, 더 어릴 적에 받았던 인상이 산사나무에 더해져 강렬하게 나타났다. 


그러니 내가 산사나무를 보고 생각에 잠긴 듯 걸음을 멈춘다면, 그것은 나의 시선만이 아니라 내 기억이, 나의 모든 주의가 걸려 있는 것이리라. 


<마르셀 프루스트 _ 봄의 문턱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1871 - 1922)는 지병을 앓았다. 호흡기가 좋지 않아 한때 빛과 향기가 단절된 밀폐된 방에서 글을 써야만 했다. 어릴 적에 보았던 꽃을 기억하며 쓴 이 글은, 그가 꽃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프루스트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병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다면 무엇을 했을까. 어떤 대상을 기억하며 그리움에 잠겼을까. 아마 꽃은 아니었을 것 같다. 짐작건대, 삶을 비관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했을지 모른다. 당연히 꽃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었을 테고. 그저 내 몸 하나 지탱하느라 힘겹게 하루하루를 소진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나는 부끄러웠다. 그의 관심, 감수성과 문장의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심한 나 자신과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제와 단절된 오늘은 없다. 어제 무엇에 관심이 있었는지에 따라 오늘의 삶이 결정된다. 관심을 갖는 만큼 새로운 것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먹고사는 문제인가, 아니면 일신의 안녕이나 명예인가. 그것도 중요하지만, 프루스트처럼 꽃에 대해, 지나가고 있는 2022년에 대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고민과 어려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도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런데도 나의 관심은 늘 나에게로 향해 있으니,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송이 꽃의 기적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전체가 바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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