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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15. 2022

모든 연인들이 그렇듯이

윌리엄 스토너의 사랑

"스토너는 어느 날 수업이 끝난 뒤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와 발표를 해도 되냐고 물을 때까지 그녀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논문을 한 번 읽어봐 달라는 부탁도 했다. 그는 그녀의 발표를 환영하며, 논문도 기꺼이 읽어주겠다고 말했다."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생의 중반,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캐서린 드리스콜. 캐서린은 스토너의 대학원 강의를 들었던 같은 대학의 강사였다. 처음에 그가 보였던 반응은 무관심 또는 '강사가 내 강의를 들어?' 이런 약간의 호기심 정도에 불과했다. 자신의 감정을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없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의 발표, 학생 찰스 워커의 방해. 세미나를 주관한 교수로서 스토너의 사과. 그는 그녀의 논문을 검토해 주기로 한 약속을 어기게 되자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녀의 아파트를 찾아간다. 별 기대 없이 봤던 그녀의 논문에서 느꼈던 감동, 세미나에서 벌어졌던 찰스 워커의 소동과 로맥스 학장과의 갈등. 스토너는 그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걱정하는 그녀에게 말한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대화를 통해 그는 자신을 짓눌렀던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비로소 벗어난다.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나 각오를 다져도 구체적인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렵거나, 막연하게 생각하던 고민이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글로 표현하는 순간 뭔가 정리되면서 비로소 그 고민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스토너가 그랬다. 그는 자신의 고민을 캐서린에게 털어놓으면서 비로소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찾아온 사랑.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그전까지 혼자 보던 세상은 더 이상 그 세상이 아니다. 모든 것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사소한 것들도 중요하게 느껴지고 별로 아름답지 않은 풍경도 나를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아름답게 보이고, 힘들었던 상황마저도 사랑을 위한 아름다운 과정으로 여겨진다. 


"밖은 어두웠다. 봄의 싸늘함이 저녁 공기 속에 배어 있었다. 심호흡을 하자 그 서늘한 기운에 몸이 찌릿찌릿하는 것이 느껴졌다. 길모퉁이의 가로등이 사방에서 다가오는 어둠을 힘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뒷마당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냄새는 안개에 붙들려 있었다. 스토너는 저녁 풍경 속을 천천히 걸으면서 그 향기를 들이마시고, 혀에 닿는 싸늘한 밤공기를 맛보았다. 그가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으로 충분해서 더 이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사랑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무의미하고 무료한 나날들, 갈등과 절망 이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지금 삶에 대한 회의나 절망감에 빠져 있다면 스토너처럼 사랑을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돌이켜보면, 사랑만이 우리를 삶의 나락에서 구원할 수 있었다. 하여, 여전히 어둠 속에 사로잡혀 있다면 나에게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녀의 아파트에 거의 매일 드나들게 된 스토너. 책을 전해준다는, 그녀의 연구에 도움을 주겠다는 구실을 찾았으나 실은 그녀를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는 나이 마흔셋이 되어서야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을 보호해 주던 과묵함이라는 막이 한 층씩 떨어져 나가서 마침내 두 사람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지극히 수줍어하면서도 서로에게 무방비하게 마음을 열고 함께 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지는 관계가 되었다."


학문적인 호기심과 교류, 공감에서, 때로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과 존중에서 시작된 관계가 남녀 간의 에로틱한 관계로까지 이어졌으니 그들은 정신과 육체를 아우르는 온전한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연구실에서 은은히 빛나다가 사라져 가는 풍경을 창문을 통해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캐서린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모든 연인들이 그렇듯이, 두 사람은 자신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그런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 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시간이 온통 정사와 이야기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말하지 않고도 함께 있는 법을 터득했으며, 편안히 쉬는 데에 익숙해졌다."


함께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던 연인은 헤어지기 어렵다. 사랑은 둘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관계가 정상적인 지도 대화가 있는지, 얼마나 지속되는지로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이들 간에는 대화가 끝없이 이어진다. 잠시 떨어져 지내는 순간에도 참지 못하고 다시 전화기를 들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들만의 이야기가 생겨나면서 관계는 공고해지는 것이다. 


이야기가 꼭 대화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침묵도 대화의 일종이고 별말이 없어도 편안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러나 대화가 없거나 대화가 수시로 단절된다면, 무엇보다 그 시간이 어색하다면 서로의 감정이 식었다는 징조일 수 있다. 점점 공유할 부분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결국 서먹해지다가 관계는 끝나고 만다. 사랑의 가장 큰 적은 대화의 부재, 정서적인 단절이다. 

Joaquin Phoenix, The Master (2012)

그러나 사랑이 뜨거울수록 오래갈 수 없는 법. 스토너는 유부남이었으니 캐서린과의 관계가 지속되면 불륜이라는 딱지가 붙을 터였다. 대학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교수 생활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더군다나 로맥스 학장은 스토너를 눈에 가시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었으니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지면 스토너는 물론이고, 캐서린 또한 온전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의 이별은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걱정했던 대로 배우자인 이디스가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채고, 급기야 로맥스도 알게 되면서 둘은 위험에 처한다. 캐서린은 다른 대학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둘은 그렇게 원치 않는 이별을 하고 만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끌어안았고, 말을 하지 않으려고 사랑을 나눴다. (...) 그녀는 오후 2시 기차에 몸을 싣고 컬럼비아를 떠났다. 그녀는 얼마 전부터 떠날 계획을 짜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스토너는 그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그것을 미리 알지 못했다는 것에. 그리고 그녀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지막인데 서로의 마음을 담은 편지라도 한 통 남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아니면 먼 훗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던지. 그랬다면 아마 스토너와 캐서린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서로에게 또 다른 아픔, 상처로 남았을 테니까. 


그럼에도 언젠가 우연히라도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다. 염원은 늘 헛된 희망 사항으로 끝나고,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스토너가 그녀의 소식을 들은 것은 딱 한 번뿐. 오랜 세월이 흘러 우연히 본 대학 출판부에서 보낸 광고 전단에서 캐서린이 책을 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책에는 그를 지칭하는 'W. S에게'라는 헌사가 적혀 있었다. 스토어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여전히 그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도 알았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아니 영원히 만나지 못할 사람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우연히 보더라도 만남으로까지 이어지거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의지이고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것을. 


"그는 자신이 글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방금 그녀를 만졌던 것처럼 손이 저릿거렸다. 그 상실감, 그가 너무나 오랫동안 속에 담아두었던 그 상실감이 쏟아져 나와 그를 집어삼켰다. 그는 의지를 넘어 그 흐름에 휩쓸리는 자신을 내버려 두었다."


죽음을 앞둔 스토너는 열정이나 사랑의 힘을 이제는 초월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는 생각한다. 그녀를 포함한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고. 그 순간만이 살아 있음을 강렬히 느꼈다고. 이런 상실감이 들더라도 그냥 놔두자고. 


열정과 환희로 시작되어 때로는 연민으로, 때로는 안쓰러움과 안타까움으로, 마지막은 상실감으로 끝났던 사랑. 사랑은 사랑했던 그 순간만이 찬란하다고. 그 순간이 짧아도 그걸로 충분하다고, 나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기회가 올까. 우리도 스토너처럼 그 기회가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스토너도 몰랐을 것이다.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아마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뭔가를 시도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분명한 한계였고, 나의 한계이자 우리 모두의 한계이기도 하다. 끝내 안타까움과 아쉬움과 후회만 남고 마는 것이 우리의 사랑이었고 지난 삶이었다. 그럼에도 내 인생에 아름답게 남았던 시간도 역시 사랑했던 그 순간이었다.




음악이든, 언어든, 영혼이든 그 물성의 있고 없음에 대해 

우리가 끝없이 갸웃거릴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니. 그럼에도 존재한다니.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김소연 _ 어금니 깨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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