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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26. 2022

지금은 아무리 하찮은 거라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베를린 안내

<롤리타>로 유명한 러시아 출신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그의 단편소설 <베를린 안내> 어떤 사연으로 베를린에 살게 된 주인공이 늘 같이 술을 마시는 친구와 맥줏집에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그곳에서 친구에게 자신이 경험한 베를린의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과 장소를 소개한다.


특이한 건, 주인공이 남들은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집 앞에 있는 하수도관이며 거리를 오가는 노면전차, 동물원 그리고 심지어 맥줏집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는 거다. 오죽하면 이야기를 다 들은 친구가 "참 시시한 안내군. 자네가 어떻게 노면전차를 타고 베를린 수족관에 가는지 누가 관심이나 있겠나?" 하고 말했을까.


내가 인상 깊었던 건 두 가지. 첫 번째는 주인공의 주변 환경에 대한 세밀한 묘사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주변을 기억하려면 내 생각에는 며칠 동안 그 장면만 지켜보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것도 아주 꼼꼼하게. 시간도 시간이지만 별것도 아닌 현상이나 장소를 오랫동안 관찰한다는 게 무용한 일처럼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 모두 사라질 장면이나 사람들인데도 나보코프는 주목했다. 그 천재가 소설을 쓰려다 보니 그런 쓸데없는 것에도 관심을 가졌나 보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주인공은 말한다.




"말이 끌던 그 궤도차는 사라졌고 전차도 사라질 테니, 2020년대 베를린에서 어떤 괴짜 작가가 지금 우리 시대를 묘사하고 싶다면 기술사 박물관에 가서 백 년 된 노면전차가 있는 곳을 찾아내고, 옛 복식 박물관을 뒤져 반짝이는 단추가 달린 차장의 검은색 제복을 끄집어내야 할 거야. 그때는 모든 것이 가치 있고 유의미하겠지. 아무리 하찮은 거라도 말이야. 차장의 돈 가방, 차창을 뒤덮은 광고 전단, 그리고 우리 증손자들이 상상해 볼지도 모를, 노면전차 특유의 그 덜컹거리는 움직임까지도. 모든 것이 세월이 흘렀다는 이유로 고귀한 것이 되고 정당화될 테지. 


나는 문학 창작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 즉 평범한 대상을 미래 시간의 너그러운 거울에 비칠 모습으로 그리는 것, 아득히 먼 미래의 후손들만이 알아보고 가치를 인정해 줄 그 향기로운 유연함을 우리 주위의 대상 속에서 찾아내는 것. 아득히 먼 미래에는 지금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이루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저절로 절묘하고 흥미진진한 것이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오늘날 가장 흔한 스타일의 재킷을 입은 남자도 우아한 가장무도회를 위해 차려입은 게 되겠지." (베를린 안내, 367 - 368쪽)




나보코프(소설 속 주인공은 나보코프 같다. 그 역시 독일에서 망명생활을 했으니까)가 왜 주변을 유심히 관찰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지금은 사소해 보이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사소해 보이는 것이 사소한 것이 아닐 수 있고, 세월이 흐르면 그 사소한 것이 실은 중요한 것이었음이 밝혀질지 모른다. 지금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물들도 세월이 지나면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나보코프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창작의 의미를 거기에서 찾았지만, 나는 일상의 소중한 가치를 이 시선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무엇이 사소하고 평범한가. 그건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내 좁은 시선이 그런 것일 뿐, 그 현상 자체가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고 마는 나의 무관심과 무심함이 사소한 거다.


당장 눈앞의 필요에 급급해 사람이나 사물이 갖는 고유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놓친다면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게 될까. 지난 시절, 내가 그랬다. 마치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바로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달렸다. 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나 시선을 가지려는 노력은 없었다. 그 시선을 갖는다는 건 살아 있는 동안 젊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유한한 삶을 무한으로 잇대는 방법이기도 한 것인데도.



두 번째 장면은 맥줏집에 사는 주인집 아이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이다. 맥줏집 주인의 아내는 이제는 시들어버린 외모를 하고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자신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 주인공은 그 장면 역시 유심히 관찰한다. 친구의 아무 흥미도 안 간다는 푸념을 뒤로한 채.


아이는 엄마가 준 수프를 다 먹어서 그런지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주인공을 비롯한 손님들을 쳐다보고 있다. 오래전부터 익숙히 봐와서, 그런 풍경이 가깝게 보이는데도 별로 놀라지 않는 모습이다.


주인공은 깨닫는다. "앞으로 아이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상관없이, 아이는 어린 시절 수프를 먹던 작은방에서 매일같이 봤던 그 정경을 언제까지나 기억하리라는 것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당구를 치거나 담배를 피우는 손님들의 모습을. 손님들에게 맥주를 팔기 위해 맥주를 잔에 채우고 있는 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아이는 기억할 것이다."


친구가 주인공에게 저 안쪽의 뭘 그렇게 보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핀잔을 주자, 주인공은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정말로 뭘 보고 있는지! 누군가가 미래에 회상할 장면을 내가 엿보았다는 걸 어떻게 그에게 입증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흘려 보는 것,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이 주인공, 나보코프였다는 것을. 그런 남다른 시선과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고, 미래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그 시선이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고귀한 정신이었다는 것을. 그 시선으로 간직했던 수많은 장면들과 사람들을 통해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갱생하였으리라는 것을.


아, 나는 나보코프처럼 세상을 볼 수 없다는 말인가? 나의 절망은 이것이고, 내가 그의 소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이 진정 풍요로운 삶인지 깨닫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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