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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23. 2022

따뜻한 마음을 지닐 것

브런치에 글을 쓴지도 벌써 1년 반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 틈틈이 간단한 감상을 일기 형식으로 적어 본 적이 있지만 공개적으로 글을 쓴 적은 없었다. 글을 쓰면 어떤 식으로든 글 쓰는 사람의 성향과 취향이 드러나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딱히 내세울 것도 없지만, 괜히 잘못된 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잘못된 지식을 전달할 경우 쓰지 않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랜 공직생활로 절제하고 드러내지 않는 성향이 습관이 된 탓도 있다. 자주 글을 쓰다 보니 요즘은 오늘은 뭘 쓸까 고민을 하기도 한다. 일하는 중간에 틈을 내서 잠깐잠깐 쓰다 보니 내용도 깊이가 없다. 나는 글을 쓰는 요령이나 방법을 배운 적도 없다. 


그런데 왜 나는 글을 쓰고 있나?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보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지난 시절이라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라는 것이 정확하겠다. 지난 시절의 고통과 상처, 이를 극복하기 위해 했던 일들, 나를 받쳐주었던 신앙 등등이 주된 것이다. 그렇게 나를 돌아봄으로써 앞으로 살아갈 나를 돌보고 견디기 위함이다. 


보통 일기 형식으로 쓰는 글들이 그렇지만, 내 주관적인 경험과 생각이 담겨 있어 편견이 있을 수 있다. 글에 담긴 내 생각과 의견이 꼭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경험한 바가 다르고, 생각 역시 일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쓴 글은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과장하지 않고, 잘난 체하지 않고, 가급적 마음을 담아서 진솔하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은 내가 앎이 부족하다는 점, 생각이 짧다는 점, 무엇보다 혜안과 지혜가 없다는 점이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자신을 돌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삶이 너무 안락하면 글을 쓸 이유가 없고, 너무 고단하면 여력이 없다." 여성학자 정희진 씨의 말이다.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안락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일이 많은 사람은 글을 쓰기 쉽지 않다. 굳이 글을 쓸 이유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는 게 너무 힘들면 글 쓸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않는다. 결국 글은 쓸 필요를 느껴야 하고, 글 쓰는 시간을 내기 위해 약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주로 읽었던 책, 다른 사람들이 쓴 글에서 단서를 얻는다. 평소 책을 읽으며, 신문 칼럼을 읽으며 메모해 둔 것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니 여기 올린 글들이 독창적인 내 생각이라고 볼 수 없다.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을 빚진 글들이다. 내 생각을 표현한다고 해도 책을 읽으며 생각했던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여, 독창적인 글은 나한테는 아직 무리다.


그리고 정치적인, 사회현상에 대한 글을 잘 쓰지 않지만 쓸 기회가 있다면 신중하게 쓰려고 한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불편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혹시 그렇게 느껴진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작가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는 글쓰기의 원칙으로 다섯 가지를 들었다. "①철저히 객관적일 것, ②인물과 사물에 대한 묘사를 진실하게 할 것, ③철저히 간결할 것, ④따뜻한 마음을 지닐 것, ⑥정치, 경제, 사회적 요소를 언어로 토로할 때 신중할 것"


그가 제시한 원칙 중에 무엇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니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글솜씨가 없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건 피하고 싶다.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글을 쓰면서 스스로도 많은 위로를 받았다. 글 쓰는 시간만큼은 집중할 수 있었고, 뭔가를 쓰다보면 가슴에 맺힌 것이 풀려나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게 되어도 글 쓰는 것은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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