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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31. 2022

이태원 클라쓰, 조이서의 사랑

가족이든, 연인이든 상대가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하면 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정말 보고 싶은데도 보고 싶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감정은 숨긴 채 (네가) 걱정돼서 연락했다고 짐짓 딴 말을 하곤 한다.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쑥스러워서, 아니면 넌지시 상대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서? 왜 그러는지는 본인만 알 테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하면 되지. 굳이 돌려서 나는 너 보고 싶은 건 아닌데, 괜히 걱정돼서 연락한 거야. 뭐 이런 건데.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왜 그렇게 감정 표현에 서툴렀을까.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내 감정을 표현할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얼마 전 본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 나오는 '조이서(배우 김다미)'라는 캐릭터는 그런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그녀는 다소 엉뚱한 면이 있고 소시오패스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무척 솔직하다. 주인공 박새로이(배우 박서준)가 그녀에게 별 감정이 없다고 해도, 그로부터 네가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막말을 들어도 자신이 좋으면 좋은 거라고 끝까지 간다. 박새로이의 사랑을 얻기 위해 플랜 B까지 만들어 놓을 정도였다.


'(당신이 뭐라고 해도) 당신을 너무나 엄청, 미치도록 좋아해요. 당신을 좋아하는 건 내 마음이고 내 권리니 뭐라고 하지 말아요. 만약 이 마음이 해고 사유면 잘라요. 받아들일 테니까.' 당당히 말한다. 조이서 역을 맡은 배우 김다미의 뛰어난 연기와 어우러져 보면 볼수록 묘한 매력이 있다. 

벌써 몇 년 전에 나온 이 드라마를 뒤늦게 보게 된 건, 얼마 전 일본에서 <이태원 클라쓰>를 리메이크해서 <롯폰기 클라쓰>라는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면서였다. 도대체 어떤 드라마길래 일본에서 다시 만드나 궁금해졌다. 1회만 본다는 것이 조이서가 등장하면서 이 드라마에 빠지고 말았다. 그 유명한 드라마를 이제야 봤냐고? 그러게 말이다. 내가 좀 늦었다.


아무튼 나는 그녀의 솔직한 표현 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앞뒤 재면서 스스로나 상대를 피곤하게 하는 것보다는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상대가 별 반응이 없어도 끝까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그녀가 부러웠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돌려서 말하는 것이 마치 미덕인 양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는 그럴 필요가 있기도 하다. 굳이 말이 필요 없는 이심전심인 상황, 아니면 그렇게 말하기에는 어색한 상황에선 상대의 분위기를 봐가면서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부담을 느껴 도망갈 수도 있다고 연애를 좀 해봤다는 선배들이 말하는 걸 들은 적도 있었다. 무릇 남자는 긴 듯 아닌 듯해야 한다나 뭐라나. ㅎㅎ 그럼에도 나는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좋았다.


무엇보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박새로이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그녀를 보면서 저런 사람이라면 뭘 해도 최선을 다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그녀는 자신이 맡은 일에도 최선을 다했고 충실했다. 뛰어난 실적을 내야 사랑하는 사람 곁에 오래 머물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내가 박새로이라도 도저히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일 뿐이라고? 물론이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훨씬 복잡하고 간단치 않으니까. 그래서 그녀가 더 빛이 나는 것일 수도 있고. 영화 <마녀>로 데뷔한 김다미의 귀여운 매력과 연기력이 하나부터 열까지 돋보인 드라마였다. 주인공이 그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너의 가지런한 세계는 

네가 사랑에 빠진 순간 무너졌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향한 

하나의 마음이 질서를 무너뜨렸다. 


그리하여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백여 년 전의 어느 위대한 작가가 그러했듯, 

비밀을 지키고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 은밀한 사랑을 지키는 것밖에 없었다. 


모든 규칙을 파괴한 사랑이 

스스로 새로운 원칙을 만들 때까지.


<황경신 _ 달 위의 낱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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