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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02. 2022

지치지 않고 책을 읽는 방법

지난 여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끝부분, 에필로그 2부를 읽었던 적 적이 있었다. 솔직히 짜증이 났다. 톨스토이는 소설을 다 썼으면 거기서 끝나야지 무슨 미련이 많길래 에필로그를 또 썼을까. 에필로그는 1, 2부로 되어 있는데 주인공들의 후일담을 쓴 것이 1부이고, 2부는 주인공들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자신의 견해, 권력이 무엇인지, 역사의 의미 등에 대한 톨스토이의 철학적인 소견이 담겨 있다. 하여, 내용이 무척 어렵다. 번역문이다 보니 글은 또 얼마나 어려운지, 안 그래도 더운데 읽다가 덮고 다시 읽고 그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차라리 철학서적이면 감안해서 읽었을 텐데. 아,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 내가 책을 읽는 습관대로 주중 낮시간에 읽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톨스토이가 문제는 아니었다. 책을 읽는 나의 자세와 심정이 문제였던 거다. 뭔가 마음이 불편한 상태에서 책을 읽다 보니 애꿎은 톨스토이 탓을 하고 만 것이다. '미안해요. 톨스토이!!' 그러지 말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전쟁과 평화>를 너무 오래 읽는 것이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일이 있어서 혹은 더위에 지쳐서 많이 읽지 못한 것도 이유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나의 독서 방법 때문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시간대별로 읽는 책이 여러 권이니, 이 책만 전념해서 읽을 수 없었다. 


한편 이 소설이 쉽게 진도가 나가기 어려운 책이기 때문이다. 그 시대 역사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 세계사를 배웠지만 자기 나라 역사를 직접 경험한 톨스토이만큼 디테일하게 알지 못하다 보니 읽다가 중간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읽다가 지쳐서 책을 덮은 후 며칠이 흘렀고, 다시 읽으려고 책을 펼치니 앞부분이 가물가물해서 그 부분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 바람에 오랜 시간 읽어야 했다. 소설은 주로 밤에 읽는데, 그때는 더워서 그런지 밤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이쯤 해서 내 독서 방법을 설명해야겠다. 

나는 하루에 여러 권의 책을 읽는 편이다. 하루에 몇 권을 다 읽는다는 말이 아니라, 시간대별로 읽는 책이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새벽에 읽는 책이 있고, 출근해서 잠깐 짬을 내서 읽는 책이 있고, 오후에 읽는 책이 있고, 밤에 읽는 책이 있다. 그러니 하루에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이다. 


새벽에는 성경을 읽는다. 벌써 오래된 습관이다. 출근해서 비교적 맑은 정신에는 경제, 시사적인 내용의 책을 읽는다. 그날 신문에서 읽어야 할 기사가 많으면 건너뛰기도 한다. 오후에도 그 연장선에서 비슷한 책을 잠깐 읽는다. 밤 시간이나 주말에는 소설을 읽는다. 


하루에도 여러 권의 책을 읽지만, 남들처럼 며칠 만에 한 권을 독파하고 그러지는 못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한 권의 책을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정독을 하는 내 독서 스타일도 영향이 있다. 문장이나 문맥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으니까, 한 권을 읽는 데 오래 걸린다. 


이런 독서방법은 장단점이 있다. 몰아서 한 권을 읽지 않으니 그 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건 단점이다. 장점은 책을 읽는데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거다. 아무리 어렵고 재미없는 책이라도 하루에 5 - 10분은 읽을 수 있을 테니까. 


혹시 재미없는 책을 읽어야 한다면 하루에 딱 10분만 읽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거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그 책을 다 읽을 수 있다. 지쳐서 읽지 못하는 책은 없다. <전쟁과 평화>를 나는 그런 방법으로 다 읽었다. 


한때 책을 멀리한 적이 있었다. 검사 시절, 바빠서 통 책을 읽을 시간을 내지 못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어느 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평소보다 10분 일찍 출근해서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겨우 10분이라니? 10분을 우습게 여기지 마시라. 그 시간이 쌓이면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좋은 점은 매일 꾸준히 책을 읽다 보면 그게 습관이 되어서 책과 친해진다는 점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하루가 길고 뭔가를 안 한 것 같은 찜찜한 생각이 드는 것, 일종의 ritual 리추얼, 나만의 의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무튼 그때부터 책과 더 가까이하게 되면서 독서는 습관이 되었다. 시작은 늘 미미했다. 끝은 창대하다고 하는데 그건 아직 모르겠고. 


책을 읽는 것이 지루하거나 잘 안되면 나 같은 방법을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정한 시간을, 때를 정해놓고 읽는 거다. 정 시간이 없으면 1페이지라도 좋다. 아무리 바빠도 10분은 낼 수 있다.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을 조금만 줄여도 책을 읽을 시간은 충분하다. 그렇게 책과 점점 친해지다 보면 나중에는 정말 지루한, 읽기 어려운 책도 읽을 수 있게 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다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독서 자체만으로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그걸 기대하면서 책을 읽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변화는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 사유와 생각이 깊어지고 시야가 넓어진다. 무엇보다 자신을 성찰하는 삶을 살게 된다. 저자의 시선에 접속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톨스토이가 150여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내 필생의 역작 <전쟁과 평화>를 읽은 소감이 어떠냐고? 내 목소리가 들리냐고?’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혼자서 묵묵히 책만 읽었다. 

하나를 잡으면 몇 번이나 거듭 읽었고,

때로 눈을 감고 책의 향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책 향기를 맡고 페이지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할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_ 노르웨이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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