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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23. 2022

눈여겨보지 않으면

누구나 꿈꾸는 행복한 삶, 그러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만족滿足이란 말 그대로 모자람이 없이 충만하고 넉넉한 상태를 의미하는 데 그렇게 되기가 여간해선 어렵고 그 끝이 어딘지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 자체가 하나의 숙제처럼 여겨질 때마다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런 삶 자체가 얼마나 피곤한지 깨닫곤 했다. 김영민 교수는 칼럼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위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최선을 다해야 목적 없이 살 수 있다. 꼭 목적이 없어야만 한다는 건 아니다. 나는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원한다. 나는 삶을 살고 싶지, 삶이란 과제를 수행하고 싶지 않으므로. 행복하고 싶어! 많이들 이렇게 노래하지만, 나는 행복조차도 '추구'하고 싶지 않다. 추구해서 간신히 행복을 얻으면, 어쩐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다. 가는 대신에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일. 억지로 가려고 하면 더 안 오는 일. '잠이 안 와요'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우리가 잠에게 가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억지로 잠들려고 할수록 잠이 달아나지 않던가. 행복도 그런 게 아닐까. 나는 자네에게 가지 않을 테니, 자네가 오도록 하게. 행복이여, 자네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발생하도록 하게, 셔터가 무심코 눌려 찍힌 멋진 사진처럼."


행복은 성취할 목표라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충만함이어야 하는데, 꿈에 그리던 것이 목표가 되는 순간 현재를 희생해서라도 그것을 얻으려 할 테니 그 희생의 시간만큼 불행해진다. 새로 산 화장품이 아까워 샘플로 받은 화장품을 아껴 쓰다가 새 화장품이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발견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떻게 해야 행복한 감정을 느끼며 살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내가 몸담고 있는 현재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 출근길에 우연히 본 전광판의 멋진 화면, 우연히 듣게 된 마음에 드는 곡, 책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문장,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거나 보았던 재미있는 소설이나 영화,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폴란드 시인 Eugenio de Adrande도 이렇게 말했다. "기쁜 순간을 만드는 데 시간을 지체하지 말라고. 한 송이 장미 그리고 맑고 찬란한 아침, 아름다운 강을 보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모두 눈여겨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고 마는,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무심코 느껴졌던 순간들이다. 행복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지 미래에 성취해야 할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었다. 사랑하고 싶다고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행복도 무심코 의도하지 않을 때 불현듯 다가오는 그 무엇이다. 

어제 오후, 문득 사는 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 붙박이처럼 붙어 있는 것도, 반복되는 일도, 쳇바퀴 돌듯 출근과 퇴근을 해야 하는 것도, 때가 되면 자야 하는 것도, 무엇 하나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 없었다. 지루한 날들의 연속, 당연히 행복감과는 먼 그렇다고 딱히 불행하다고 할 수도 없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배부른 소리일까? 지난여름 태풍으로 수해를 입어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있고, 근자에는 이태원에서 발생한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깊은 시름에 잠긴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일은 언론으로 접하는 남의 일일뿐 내가 경험한 절박한 어려움이 아니었다. 사람은 내 일이 되어야만 비로소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우매한 존재이기 때문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주변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사소하지만 뭔가 즐거운 일을 찾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고, 무엇보다 자기 파괴적인 비윤리적인 행동도 금물이다. 잠깐의 쾌락을 위해 내 영혼이나 다른 사람들을 망가뜨리는 건 곤란하다. 


사람들은 행복과 쾌락을 혼동한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들을 하고 싶어 하고, 그런 장소에 가고 싶어 한다. 흥분되는 것과 행복한 건 다르다. 흥분된다고 행복한 감정이 샘솟는 것도 아니고, 그 느낌이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나고 나면 헛헛한 느낌만이 남아 공허해지고 만다. 


밋밋한, 그래서 아무런 흥분할 거리가 없는 삶을 사는 사람도 얼마든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다. 행복은 내가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내가 신경 쓸 게 아니다. 하여 사는 게 지루하고 지겨운 건 내 안에 뭔가가 고장이 난 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게 뭔지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언제나 나한테 있었다. 내가 문제였다.





하지만 모르는 것투성이

그것이 얼마나 희망이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첫눈 같은 신비였는지

너와 나 사이의 악기였는지를

떠날 때 그때 간신히

소스라치듯이 알기는 할까



<문정희 _ 떠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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