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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20. 2022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니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얀 마텔의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소개하는 글에 이렇게 썼다. "일생 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은 제한돼 있고 나는 이미 40년을 살아버렸다. 이제는 '그럭저럭 읽을 만한' 소설까지 읽을 여유가 없다. 이런 조바심 때문에 근래의 내 독서는 점점 강퍅해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지식이 필요하다면 관련 분야의 책을 틈틈이 찾아볼 테니 그건 논외로 하더라도, 소설을 비롯하여 굳이 읽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책들(물론 깊이 들어가면 사는데 지장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 책들도 좀 더 성숙한 삶을 사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은 일부러라도 찾아서 읽지 않으면 잘 읽지 않게 된다. 막상 찾아보면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어떤 책을 고를지 막막하다. 어떻게 하면 책을 잘 고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책에 대한 흥미를 갖기 위해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제한된 시간 안에 더 많은 책을 읽을 요량으로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대개는 ‘남들이 좋다고 하더라,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더라’는 소문을 듣고 책을 사거나, 아니면 유명 작가가 쓴 책을 찾아서 읽기도 한다. 이렇게 고른 책들이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적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방법이 꼭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남들이 좋다고 나한테 꼭 좋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읽어야 할 책은 많고 참 난감하다. 아예 안 읽으면 어떨까?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건 사랑하게 되면 헤어질지도 모르니 차라리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게 낫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데 헤어질 것을 염려해서 그 사람을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남들이 대체로 그런 행로를 겪으니까? 뭐 그럴 수도.


책도 마찬가지다.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없으면 어쩌지. 중간에 포기하기도 그렇고. 그럴 바엔 읽지 말자'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나도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재미없는 책이라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어쨌든 좋은 책은 다 읽고 나서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길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사랑이 그런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독서와 사랑은 많이 닮았다.


지난 달부터 읽기 시작한 책을 아직 다 읽지 못했다. 주말이나 연휴를 이용해서 다 읽으려고 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책을 볼 마음의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럴 때 나는 집에서 읽던 책을 사무실로 가지고 온다. 퇴근을 미루고 마저 읽기 위함이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지 않으면 책을 읽기가 어렵다. 책 말고도 재미있는 것이 너무나 많고,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들이 시시각각 일어나기 때문이다.


소설은, 특히 장편은 읽기 시작했다면 너무 오래 끄는 건 안 좋다. 중간에 멈추었다가 다시 읽으려면 이미 읽었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 앞부분을 다시 훑어봐야 하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행위에도 리듬과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흐름을 타면 수월하게 읽을 수 있지만, 흐름을 놓치면 여간해서는 다시 읽기가 쉽지 않다. 결단해야 한다. 시간을 내야 하고 마음을 쏟아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책을 읽는 것 또한 다르지 않다. 그렇게 하면서 내가 다듬어지는 것이다.


책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을 읽는 자세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책을 읽는다고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자세는 두고두고 내 삶의 나침반이 되어 나를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가고 싶은 저 빛 속으로 말이다. 독서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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