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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16. 2022

문득 그 사람이 궁금해지면

이기호/ 누가 봐도 연애소설

이기호 작가의 단편 <누가 봐도 연애소설> 단편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엽편소설이다. ‘엽편소설’은 나뭇잎 넓이 정도에 완결된 이야기를 담아내는, 단편소설보다도 더 짧은 소설을 일컫는다.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아 10분 남짓이면 한 편을 읽을 수 있다. 짧다고 내용이 부실한 것도 아니다. 제한된 분량에 이야기를 담아내다 보니 더 압축적이고 군더더기가 없다. 


그 책에 나오는 이야기 중 <내 인생의 영화>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여인, 그때 끝내 고백하지 못하고 헤어진 후 어느덧 중년이 된 지금까지 그녀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어느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 여인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불행했다. 그녀의 남편은 사업을 한답시고 재산을 탕진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기꾼으로 전락한 패인이었다.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니 자연스럽게 별거에 이르렀고, 여인은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다. 남자가 마트에 갔다가 그 여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고백한다. "초등학교 졸업한 후 지금까지 그 긴 세월 동안 그녀를 잊은 적이 없다고. 매일같이 떠올리고 그리워한 건 아니지만, 추운 겨울날 혼자 막히는 도로를 운전하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 소주 마시고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올 때 '아, 그 친구는 지금 뭐 하면서 지낼까?' 목소리라도 들어보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자기한테는 바로 그녀였다고." 


마음에 품고 있다 해서 그 사람을 항상 생각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지지만,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불현듯 떠오르곤 한다. 다시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를 가슴에 품고 사는 것만으로도 삭막한 삶을 살면서 큰 위안으로 삼았던 그였다. 


이문재 시인도 <농담>에서 말했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에게는 그녀가 그런 사람이었다.

 

다시 만난 그녀가 행복하게 살지 못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자신도 상처투성이로 살아서 그랬는지 그는 그녀가 못내 안쓰러웠다. 그 마음만큼 그녀에게 매달린다. 그는 말한다. 


"원래 사람 밝은 면만 보면서 좋아하면 그게 어디 사랑입니까? 사랑이 생기려면 상처를 봐야죠. 그 상처를 보고 나니까 매일 미옥이 얼굴만 생각나고, 마트 끝마칠 시간 되면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가게 되고. 그러다가 큰마음먹고 미옥이에게 영화 보러 가자고 한 거죠." 그렇게 그들은 영화를 보러 간다.


좋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듯, 다시 끌린 이유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외모는 지난 시절만 못하지만 남들과 다른 굴곡진 인생, 다른 사람들은 쉽게 통과하는 것을 별다른 이유 없이 돌고 돌아 어렵게 가고 있는 사람,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다. 그 지점에서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이 시작된다. 젊은 시절 느꼈던 불꽃같은 감정은 아니지만, 어느덧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그녀에게서 그때와 다른 차원의 애틋한 마음이 생겼던 거다. 


상처가 있는 사람이 상처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법, 어쨌든 나는 소설 속의 남자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관에서 벌어진 해프닝 그리고 그가 보인 과한 반응, 그 입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랑하는 그녀와 보러 간 그 영화는 그게 어떤 영화였든지 그에게는 '내 인생의 영화'였을 테니까. 해서 그걸 방해하는 사람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내 인생을 방해하는 것과 진배없었으니까. 





너의 이름은 미츠하!!

소중한 사람! 잊고 싶지 않은 사람! 

잊으면 안 되는 사람!

.

.

.

너를 좋아해.


<영화 _ 너의 이름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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