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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Dec 11. 2022

도대체 나한테 왜...?

살아보니 삶이 주는 어려움은 피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런 끔찍한 일이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일어났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내가 보였던 반응이었다. 대개는 내가 믿는 신에 대한 원망으로 흘렀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도저히 나한테 이럴 수는 없다고 따지기도 했다. '도대체 왜? 왜?~~' 끊임없는 원망과 불평, 나는 믿음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물론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그런다고 하나님이 눈 하나 깜짝하실까? 그렇지 않았다. 어려움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계속 이어졌다. 마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고난을 대하는 나의 자세와 중심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내 중심이 문제였다. 고난은,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포용할 때에야 비로소 힘을 잃었다. 그렇다고 불평과 원망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내 불평마저도 들으시고 내가 알 수 없는 적절한 방법으로 나를 위로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억울하다고? 얼마든지 억울하다고 불평해도 된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한다. 성경, 특히 시편은 고난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하소연으로 가득 차 있다.


왜 하나님은 사람들의 그런 하소연을 성경에 그대로 기록하셨을까? 하나님 입장에서는 자기를 믿는 자들의 불평과 하소연이 불편하셨을 텐데 말이다. 나는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만 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자에게 고난은 하나님께 나가는 또 다른 통로이다. 고난이 없었다면 나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을 거다. 그때 필요한 것은 거짓된, 뭔가 숨기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진실함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도 바로 이 진실하고 거짓되지 않은 나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긍휼과 평강이 임하리라. 오직 그 진실함만이 나를 구원하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리라.  <시편 91:15>



나는 힘들 때 시편을 자주 읽었고, 그 속에서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구나.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들도 나와 다를 바 없는 약한 사람들이었구나. 하나님은 이런 부족하고 죄 많은 인간을 사랑하셨던 거구나.'


지금 당하는 고통도 삶을 완성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그 과정이 힘들어도 내가 완전히 넘어지지 않는 것은 그나마 하나님이 나를 그의 손으로 붙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않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라.  <시편 37:23-24>



다윗의 시를 읽고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기를 바란다. 다윗의 믿음이 나의 믿음이 되기를,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위로가 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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