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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30. 2022

한나의 기도

몇 달 전쯤 <한나와 브닌나>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오늘은 한나의 믿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려고 한다. 아이를 갖지 못했던 한나, 남편의 또 다른 부인인 브닌나로부터 무시와 괴롭힘을 당했던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셨던 분이 그녀가 믿었던 하나님이었다. 


사무엘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얻은 귀한 선물이라는 의미가 이름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한나의 이야기를 읽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한나는 꿈에 그리던 귀한 아들인 사무엘을 얻었음에도 왜 그 아들을 다시 하나님께 바쳤을까. 


불임에서 임신으로, 결핍에서 성취로, 부족함에서 충만함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슬픔에서 기쁨으로 인생이 바뀌었고,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남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무엘을 잘 키우고 돌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한나는 다른 선택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새문안교회 이상학 목사님의 설교 요지가 이렇다. 




만일 한나가 남들처럼 아들을 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사무엘을 잘 키우며 살았다면 성경의 사무엘서는 1장에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사무엘도 평범한 인생을 살면서 혼돈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하는 선지자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받으면 영적인 여정을 멈추고 만다.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버리고, 자신을 힘들게 했던 문제를 잊는다. 열심히 기도했던 이유가 살면서 부딪히는 각종 문제들을 해결받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되고 마는 것이다. 


한나는 달랐다. 남들이 예상할 수 없는 한 차원 높은 선택을 한다. "아이가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사무엘상 1:22) 아이가 젖을 떼면, 그 아들과 헤어져 실로에 있는 엘리 제사장의 성막에서 그를 키우게 하겠다는 결심이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것이다. 어머니로서, 무엇보다 귀하게 얻은 첫아들이라는 점에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한나는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의 전에 미련 없이 사무엘을 드린다.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들어 그를 내게 주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리이다." (사무엘상 1:28) 그녀는 서원을 기계적으로 의무감으로 지키지 않았다.


‘하나님이 놀라운 선물을 주셔서 내게 성취의 기쁨을 누리게 하셨으니 나도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사무엘을 드렸다. 기꺼이 이별의 아픔을 감내하고, 애써 성취한 것을 다시 내려놓는 결단을 한 것이다. 채움에서 결핍으로, 얻음에서 상실로 다시 떨어지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었다. 


그녀는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 아니다. 나의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을 충족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영원한 것을 사모했고, 하나님이 주신 것보다 하나님 그분 자신을 추구했다. 


하나님이 불쌍한 그녀의 인생을 살피시고, 돌보시는 것을 체험하면서 그녀의 마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부요함이 임했다. 그래서 사무엘을 떠나보내고도 그 마음에 상실감이 아닌 기쁨이 충만하여 그 유명한 '한나의 기도'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사무엘을 하나님이 돌보시고 잘 키우실 것이라는 믿음 역시 있었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로다. (한나의 기도, 사무엘상 2장)


그렇게 귀한 믿음을 가진 한나를 하나님이 모른 체하실 수 없었다. 한나의 자발적인 헌신과 믿음을 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선물을 받게 된다.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믿음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혼란으로부터 수습하고 회복의 역사를 만들었던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이 만들어졌다. 

기도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도 귀하다. 그마저도 안 하거나 하고서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니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기도할 대상 그 자체이다. 하나님은 기도한다고 모든 것을 들어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과 맞아야 주실 수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흔들린다. ‘기도했는데 들어주시지도 않으니 뭐 하러 기도해.’ 보통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간 사람은 기도했으면 어떤 식으로든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원하는 것을 주실 것이고, 그게 내가 원하는 것과 일치되지 않더라도 더 좋은 것임을 믿는 것이다. 


한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그분 자체를 기도의 목적으로 삼았다. 그런 믿음이었기에 기도로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다. 그녀가 사무엘을 바치면 하나님이 또 다른 자녀를 주실 거라고 믿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조건적인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뭘 해주시겠지, 내가 착하게 살면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시겠지, 안 믿는 것보다 낫겠지만, 조건을 붙이는 순간 믿음이 아닌 거래가 되어 버리고 만다. 하나님과 거래를 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지금 거래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 그분만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는가. 한나의 믿음은 나에게 도전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평범한, 그 시대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여인인 한나를 성경에 기록하신 이유가 그 이유일 게다.


하나님은 잠언(4:8)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내 너한테 말해주마.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그것은 맹목적인 헌신이고, 

절대적인 겸손이며, 

완전한 복종이고, 

너 자신과 세상 전체를 거스르는 신뢰와 믿음이며, 

네 온 마음과 영혼을 사랑하는 이에게 바치는 것이란다.


<찰스 디킨스 _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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