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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Dec 09. 2022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야 해

필립 로스 / 에브리맨

"현재(present)는 하늘이 준 선물이지만 유효 기간은 '그 순간'이다. 쓰지 않으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은 '현재'를 사용한 양에 따른다." 어느 책에서 본 글이다.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주중에는 책을 읽지 못했다. 이상하게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퇴근해서 뭘 하며 보내다가 12시를 훌쩍 넘어 잠자리에 드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조용히 앉아 있을 여유도 없는 것 같다. 아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책을 읽지 않으니 나만 보이고, 나를 더 붙잡게 된다. 당연히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도 어렵다. 그나마 책이라도 읽으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게 되고, 그 생각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거다.


한편 세상이 너무 혼란스럽다는 이유로, 온통 관심이 다른 곳에 가있기도 하다. SNS에는 온통 유명인과 월드컵 축구와 관련된 일만 언급된다. 나는 없고, 그저 다른 사람과 세상 관심뿐이다. 세상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거대한 담론에 갇혀 나는 소외된 지 오래되었다.


세상일과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를 쫓아 살다 보면, 불현듯 다가온 노년 앞에서 삶의 무상함과 허무함에 빠져 오늘 말하는 <에브리맨>의 주인공처럼 죽음 앞에서 힘들어할지도 모를 우려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은 공동묘지에서 주인공의 장례를 치르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의 아픔도 있었지만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대체로 성공한 인생이었다.


나이가 들어 은퇴한 후 평생 꿈꾸어왔던 그림을 그리며 소일하지만 그는 병고와 죽음 앞에서 힘들어한다. 욕망을 쫓아 살았던 젊은 시절, 그리고 세월이 흘러 누구나 맞게 되는 늙음과 죽음 앞에 선 주인공의 모습은 나약하고 때로 처량하기까지 하다. 소설은 한 인간의, 아니 죽음 앞에 선 보편적인 우리의 모습을 냉정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이 누구보다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젊어서 누린 것이 많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을 누린 사람일수록, 삶에 대한 애착이 많고 죽고 싶지 않은 법이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죽음 이후 다른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어 그들로부터 들을 수도 없다.


물론 나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젊어서 욕망에 휘둘리며 사는 것은 인간이라면 겪어야 하는 과정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욕망을 줄이고 삶을 단순화해 나간다면 덜 허망하지 않을까.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함께 가진 인간이 육체적인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그 생각부터 허망한 것이다.


삶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며 조그만 것에서부터 보람과 의미를 찾아가다 보면 비록 육체는 쇠하나 정신은 더 찬란하게 빛날 날이 오지 않을까, 죽을 때 덜 후회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최소한 주인공처럼 남은 생을 비관하며 살지는 않을까 믿고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늙음과 죽음 그리고 삶의 허무함까지 포함해서, 보잘것없고 부족한 나를 내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인생이 재미있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욕망 뒤엔 허무함도 함께 온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필립 로스는 그런 내 기대를 반어법을 동원해 충분히 충족시켜 주었다.




"하지만 현실을 다시 만드는 건 불가능해.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그것은 진실이었고 또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 오래전에 그녀에게 했던 말이기도 했다.


<필립 로스 _ 에브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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