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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Dec 12. 2022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길

영화 / 아이리시맨

요 며칠 날이 풀려서 그런지 하늘은 맑지 않았다. 겨울 특유의 삭막한 분위기까지 더해져 주변 풍경이 더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벌써 몇 년 전이다. 코로나19가 엄습하기 직전, 나는 틈날 때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곤 했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아이리시맨(The Irishman), 2019>은 씨네큐브에서 본 것으로 기억한다.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만든 영화로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하비 케이들 등 관록 있는 배우들이 등장한다. 러닝타임이 무려 3시간이 넘는 근래에 보기 드문 스케일이 큰 영화다. 

영화는 마피아가 등장하는 범죄 드라마이지만, 미국 현대사를 압축해 놓았다. 중간중간 케네디, 닉슨 등이 TV를 통해 등장하고, 등장인물들과 이런저런 일과 이해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의 연기다. 물론 그 외에 등장하는 배우들도 우리가 잘 아는 배우들이지만, 두 배우의 무게감은 영화를 보는 내내 압도적이었다. 


컴퓨터 그래픽이 난무하는 요즘, 이 영화는 스토리, 구성, 연기 모두 인상적이다. 물론 두 배우의 젊은 시절을 되살리기 위해 일정 부분 그래픽이 동원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픽도 등장인물이 실제로 연기하는 것이니, 완전 그래픽이라고 볼 수도 없다. 3시간이 넘는 시간을 그것도 한 자리 앉아서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마피아의 범죄행각이나 그 시절의 정치적인 배경도 아니다. 주인공 프랭크 시런과 그의 딸 페기, 두 부녀의 가슴 아픈 사연이다. 페기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청부살인을 하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고, 급기야 자신을 귀여워하고 아끼던 지미 호퍼를 아버지가 죽인 것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와 의절한다. 프랭크는 그런 딸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하지만, 페기는 끝끝내 외면한다. 영화는 프랭크가 딸과 화해하는데 실패하고 노년을 요양병원에서 쓸쓸히 마감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프랭크는 하소연한다. '젊어서 바쁘게, 험하게 산 건, 모두 가족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너희들과 함께 하지 못한 건 먹고살기 위해 온갖 일을 하느라 어쩔 수 없었다고.' 우리 현실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그런지, 프랭크의 하소연도 이해가 갔고, 페기의 태도도 한편으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픈 것이다.  


특히 비정한 남자들의 세계를 잘 모르는 페기가 청부살인을 일삼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도 이젠 늙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버지가 자신이 근무하는 직장까지 찾아왔는데도 외면하고 돌아서는 모습에선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비정함마저 느껴진다.  

구성, 스토리, 배우들의 연기 등 뭐하나 흠잡을 것이 없는 영화지만, 다 보고 나면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적인 여운을 깊게 남긴다. 한때 뉴욕 거리를 주름잡았던 갱스터인 프랭크와 전미 트럭 노동조합을 좌지우지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미 호퍼 역시 늙음과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영화 끝을 장식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들은 한 시대를 나름 충실하게 살았다고 하지만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무언가가 세월이 흐르면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삶의 무상함 때문이었을까. 


인생이 그런 것이다. 절정기가 있으면 쇠퇴기도 있기 마련이지만, 쇠퇴기에 접어든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래픽에 의존해서 젊은 시절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인생무상이라는 삶의 회한이 깊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세월은 빠르게 지나간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하고 넘기기엔 우리가 지고 있는 세월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후회스러운 삶을 살았든 남다른 자부심으로 살았든, 우리 모두의 시간은 다시 앞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나는 인간의 삶과 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랭크나 나나 다를 바가 없다. 이해를 구하지만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선의는 언제까지나 나에게만 선의일 뿐.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 기대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나만 더 힘들게 할 뿐이다. 프랭크도 힘들어 보였다. 자신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신부에게 병실 문을 닫지 말고 열어놓으라고 부탁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미래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 같아 씁쓸했다. 어차피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길이지만... 어쩌면 노년에 이른 감독 역시 그걸 말하고 싶었을지도...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다윗의 시, 시편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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