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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07. 2023

은퇴 이후의 삶

"경박한 비둘기가 허공을 가르며 하늘을 날다가 문득 공기의 저항을 느끼고 이런 생각을 품는다. 이 공기만 없다면 훨씬 더 잘 날아다닐 수 있을 텐데..." 임마누엘 칸트의 지적이다.


진실한 깨달음이 일어나는 곳은 공기가 없는 공간이 아니라 지금 이 모양의 세상 한복판, 인간 존재의 문제 상황 속이다.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오랜만에 예전 직장 동료들과 산에 다녀왔다. 산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왜 이렇게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건강을 생각해서 그런지 아니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그런지, 전자라면 좀 늦은 것 같고(물론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후자라면 서글프다.


나라가 좁아서 그런지, 나이 든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는지 모르겠다. 그들을 보면서 은퇴 후의 내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이젠 현업에서 떠나서,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산에 가는 것 말고는 달리할 일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언젠가 나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꼭 뭘 해야 하지는 않지만, 무료함에 지쳐 산으로 가는 것도 좀 그렇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을 보면 은퇴한 후 한적한 바닷가에 살면서 젊은 시절 읽었거나 새로 나온 로맨스 소설(연애 소설)을, 그것도 아주 슬픈 이야기의 소설을 다시 읽는 노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이 들어 다시 젊은 시절 내 가슴에 열정을 불태우게 했던 책들을 다시 읽는다고 그 시절의 열정과 감정이 살아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다시 읽는다면 그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경험이 없어 이해하지 못했던, 책 속의 장면들과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알게 될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아무나 그렇게 하는 건 아니다. 평소 책을 가까이했던 사람이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예 그런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산으로, 공원을 헤매거나 또는 TV 앞에 멍하게 앉아 시간을 죽이는 노인들이 더 많으니 말이다. 차라리 그 노인처럼 한적한 곳에 살면서 동네 주변을 가볍게 산책하고, 책을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반려견 한 마리가 옆에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의지가 될 것 같고. 삶을 조용히 회고하면서 이렇게 조용히 늙어가는 것이 갈 곳 없어 방황하는 것보다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지금 읽은 책들을 다시 읽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상 더 필요한 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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