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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Dec 31. 2022

나는 스스로에게 진실했는가

줄리언 반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세운 원칙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진실하자는 것. 어떤 글을 쓰든, 글쓴이의 경험과 생각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건 경험한 사실일 수도 있고 그때그때의 감정의 상태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나 희망일 수도 있고. 


나는 글로 나 자신을 부풀리거나 속이고 싶지 않았다. 남들은 잠시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을 영원히 속일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도 어언 3년째, 나는 처음에 다짐한 이 원칙을 잘 지켰을까? 나는 나 자신에게 진실했는가? 시류에 맞춰 적당히 타협하지는 않았는가?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웠다. 줄리언 반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고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는 사람, 소위 공인이라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드러나는 것에 부담을 느낄 테니, 위선적인 것은 별론으로 하고, 더욱더 언행에 조심하게 된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비교적 마음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경계해야 할 것은 내가 하는 이야기가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덜 주목하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하면 어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은 내가 가장 먼저 읽는다는 점에서, 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나 자신이다. (세상 일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주관적인 생각이니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경험을 이야기할 때 가급적 기억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실을 왜곡하고 가감하고 윤색한다. 불리한 것은 가급적 숨기고, 유리한 것,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드러낸다. 한편 기억이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불분명한 기억조차도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처럼 쓰는 것도 거짓이긴 매한가지다. 위증죄가 자신의 기억과 다른 증언을 하는 증인을 처벌하는 것처럼.


검사 시절, 사람들을 조사할 때도 그랬다. 같은 사실에 대해 이 사람 말이 다르고 저 사람 말이 달랐다. 진위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 직업이었지만, 돌아보면 과연 얼마나 진실을 찾아갔는지 회의가 든다. 살아보니 내 기억조차 완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불과 얼마 전의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지 않은가. 따라서 글을 쓸 때 더 경계하고 경계하는 수밖에, 진실하자고 가슴에 늘 새기는 수밖에 없다. 


2022년을 보내면서 올해 썼던 글들 중 일부를 다시 읽어봤다. 많은 글들을 썼지만 제대로 된 글은 없었고, 나 자신은 물론 누군가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글도 딱히 찾기 어려웠다. 때로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자조적으로,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또는 새로운 다짐을 위해 썼던 글들, 부디 앞으로 쓰는 글들이 별게 아니더라도 나에게 진실하자는 원칙에 서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그건 2023년에도 나만의 글쓰기가 계속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지난 삶과 나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여정을 멈출 수 없어서기도 하고. 하여, 나는 줄리언 반스가 그의 책을 통해서 한 고백과 회한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젊었을 땐, (내 이야기이다), 자신의 감정이 책에서 읽고 접한 감정과 같은 것이 되기를 바란다. 감정이 삶을 전복하고 창조하고 새로운 현실을 규정해 주길 바란다. 세월이 흐르면, 그 감정이 좀 더 무뎌지고, 좀 더 실리적이 되길 바라는 것 같다. 그런 감정이 지금 그대로의 삶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응원해 주길 바란다. 자신이 그럭저럭 괜찮게 살고 있다고 말해주길 바란다. 이런 심정에 일말이라도 그릇된 것이 있을까?


'회환(remorse, 자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이란 말은 어원적으로 '한 번 더 깨무는 행위'를 뜻한다. 회한의 감정은 그와 같다. 내가 썼던 말을 다시 읽을 때 나를 깨무는 힘이 얼마나 그악스러웠는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줄리언 반스 _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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