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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소프트파워가 있는가

by 서영수

"과도한 영토 분쟁과 인권 탄압으로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퇴색하고 있다. 당장은 중국이 하드파워를 기반으로 국제정치를 주도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소프트파워 부족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한국에는 기회다."


'2022 세계경제금융 컨퍼런스'에 참석한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기조연설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고 역동적 시민사회를 갖춘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이 교수는 1980년대 소프트파워 이론을 주창한 세계적 석학이다. 소프트파워는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이른바 하드파워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문화, 예술, 과학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힘을 뜻한다. (한국경제신문 5/20자 기사 인용)


조지프 나이 교수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는 하드파워를 이용해 이른 시일 내에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는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호소 등 소프트파워가 세계의 지원을 이끌어냈고 반대로 러시아는 소프트파워 손실이 경제 제재 등 하드파워 손실로 이어진 결과"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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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중국이 등장하고 하드파워에 소프트파워까지 그동안 이 블로그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무거운 얘기를 왜 하느냐고 묻는 분이 있을 수 있다. 내가 항상 인간의 감성적인 면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런 기사를 인용한 것도 아니다.


국가와 사회에도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있듯이, 우리 개개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하드파워는 무엇이고 소프트파워는 무엇인가.


하드파워는 학력, 경력, 직업, 사회적 지위, 부 등 외부적인 조건을 말하고, 소프트파워는 감성, 공감 능력, 지성, 품위 등 내적인 조건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하드파워를 갖추면 아무래도 살아가는 데 유리하다. 고학력에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직업을 갖고 있다면 삶이 한결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다일까?




우리 사회를 보면 하드파워를 갖추고 있지만, 공감 능력도 없이 감성이나 품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하드파워는 강할지 몰라도 소프트파워는 약한 사람들이다. 세상을 경제적인 잣대로만 판단하는 벼락부자, 즉 졸부로 지칭되는 사람들, 타인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자신만 아는 그래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거나 품위 없이 행동해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어떤 면에서는 하드파워보다 소프트파워를 갖추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사회적 지위는 변변치 않아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기꺼이 포기하는 사람들,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의연하게 행동하는 사람들, 자신에게 특별한 이익이 주어지지 않아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이면을 살펴 세상을 선한 방향으로 이끄는 사람들, 세상의 흐름을 바꾼 것은 이런 소프트파워를 갖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생전에는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사후에 더 유명해진 사람들도 있다. 빈센트 반 고흐, 프란츠 카프카, 페르난두 페소아 등 예술가나 작가들이 그렇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예술이나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고. 틀린 말이 아니다. 중요한 건 하드파워를 갖춘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세상을 질서를 바꾸지만, 정작 세상을 실질적으로 새롭게 한 사람들은 소프트파워를 갖춘 이들이라는 거다.


가장 좋은 건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조화를 이룬 사람이겠지만, 설사 하드파워가 부족하다고 해서 너무 기죽을 필요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소프트파워를 기를 수 있느냐. 공부를 열심히 하면 지식을 쌓을 수는 있지만, 지성과 지혜, 감성까지 저절로 얻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과 지성은 어떻게 다른가? 지성은 지각된 것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정신 작용을 의미하고, 지식은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을 의미한다. 지식의 바탕 위에 통찰력까지 갖추어질 때 비로소 지성이 생기는 셈이다. 지성과 지혜를 얻기 위해선 사물과 세상을 보는 나만의 시선을 길러야 한다. 깊이 있는 생각과 스스로를 돌아보고 현실에 적용하는 자세까지 겸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소프트파워를 갖추기는 어렵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남다른 시선을 가져야 하고, 남들이 관심 갖지 않는 분야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폭넓은 시선이 필요하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나에게 소프트파워가 있는지 물었다. 소프트파워의 진정한 힘은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공감 능력과 희생정신에 있다면 나는 한참 부족하고 또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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