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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27. 2023

첫 키스의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 / 상실의 시대

“내 인생의 궤적을 뒤바꿔 놓을 수만 있다면, 그것을 첫 키스로 하겠어요, 반드시.”라고 말했던 미도리가 생각나는 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인생의 궤적을 바꾸어놓을 만한 것은 바로 그 '첫' 순간이고, 세월이 흘러 기억이 가물가물해져도 여전히 기억하는 건 바로 그 '첫 순간'이다.


사람이 부자가 된다는 건, 물질적인 부가 많고 적음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물질은 삶을 편리하게 해 줄지는 몰라도 인간의 정신도 편리하고 자유롭게 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물질이 많아지면 그걸 지키기 위해 삶이 더 불편해질 수도 있다. 비싼 슈트를 입는 순간, 구겨질까 봐 오히려 행동의 제약이 생겨 불편해지는 것처럼.


아무리 많아도 부작용이 적은 건 우리의 기억이다. 물론 그 기억 때문에 힘들어지기도 하지만, (이별의 순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들…), 그 순간들도 지나고 나면 추억으로 남는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이다. 회고할 수 있는 힘,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돌이켜보면 기억할 추억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인생의 풍요로움이 결정되는 것 같다.


추억마저도 없다면 나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진정한 부자는 그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 추억이 꼭 사람과만 관계될 필요는 없다.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어떤 풍경, 어떤 대상에 몰입했던 순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서 느꼈던 편안함… 모두를 포함한다.


어젯밤, 눈은 내리고 적적한 마음에 하루키의 책을 펼쳐 저 문장을 읽었다.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한데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다니,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에게도 추억할 ' 첫 순간'이 얼마나 될까. 내 인생의 궤적을 바꾸어놓은 그 순간들, 순간들을 오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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