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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24. 2023

무관심해서 하는 질문

설 명절, 모처럼 만난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주로 과거에 함께 했던 추억을 공유하는 자리다. 대화의 주제는 부모 입장에선 자식과 함께 또는 자식을 통해 경험했던 세상사, 자식 입장에선 그 시절 부모와 함께 또는 공부하면서 겪었던 추억이 주된 화제였다.


조심해야 할 건,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섭섭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감정적으로 되는 것이다. 섭섭하거나 힘들었던 일들은 지나간 대로 놔두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 끄집어내 곱씹어 봐야 바꿀 수 없는 일에 서로 마음만 상하기 때문이다. 가족은 껴앉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지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잊고 산다. 편하다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문제는 그런 대화조차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 특히 일정 기간 떨어져 지냈거나 함께 한 시간이 짧을수록 대화는 더 짧아진다.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으면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힘들지는 않느냐'는 정도의 의례적인 안부를 묻다가 얼마 안 가 그마저도 끊기도 만다. 가족도 자주 연락하고 만나야 할 이야기가 많은데, 가끔 만나다 보니 가까운 이웃보다 거리감이 더 느껴지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부모님과 손자 관계, 즉 세대를 뛰어넘는 관계가 되면 공유할 화젯거리가 더 줄어든다는 점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관심사와 손자 손녀의 관심사가 같을 수 없다. 살아온 경험도 너무나 다르고. 몇 마디 외에 더 이상 이야기가 없어지면, TV 앞에서 별 재미도 없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가정들도 다반사, 사실 TV를 보고 있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마치 TV를 보는 척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젊은이는 명절이 피곤하고 나이 든 부모는 오랜만에 본 자식들의 피곤한 모습에 마음이 무겁고, 그렇다고 딱히 공감할 화젯거리도 별로 없고.


오랜만에 얼굴 보면 됐지, 뭘 그렇게 심각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는 말, 가족인데 굳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필요가 없다. 서로의 안부만 확인하면 그걸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나도 언젠가 아이들이 낳은 자식인 손자, 손녀와 이렇게 서먹서먹한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그때가 되면 부모님의 가슴에 남았던 아쉬움과 먹먹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보는 세상과 아이들, 손자 세대가 보는 세상이 다른 것이라고. 세상 만물은 그대로지만, 세상을 보는 시선, 세상을 대하는 마음이 다른 것이다. 요즘 세대의 고민과 관심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세월이 주는 한계는 분명하다. 그래서 아버지는 특별한 말씀 없이 TV를 보거나 꾸벅꾸벅 조시는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세상으로부터의 소외도 괴롭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의 소외는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법이다. 나이 든 부모님을 보면 안타깝고, 나도 언젠가 그 나이가 되면 비슷한 경로를 겪을 것 같아서 마음이 이내 착잡해졌다. 그렇다고 세월을 건너뛸 수 없는 노릇이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몇 년 전 신문에 난 임성순 작가의 칼럼 <무관심해서 하는 질문>이 기억이 난다. 대화 부재 시대에 참고할 만한 조언이다. 가족 간에도 노력해야 한다. 서로의 관심사를 알기 위해, 물론 그 관심사가 공통의 주제면 금상첨화겠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말을 줄이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도 중간에 끼어들지 말고.



"조카의 취직 여부에 정말 관심이 있다면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알아볼 방법은 많이 있다. '공부를 잘하느냐' '결혼은 언제 하느냐' '애는 언제 가질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질문을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한다는 것은 '나는 너에 대해 관심도 없고 할 말도 없지만 네 인생에 참견하고 싶다'고 선언하는 격이다. 사실 우리는 친척들에 대해 잘 모른다. 예전처럼 대가족도 아니고, 한마을에 모여 사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 단골 카페의 주인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보다 데면데면한 사이가 떨어져 사는 친척이다. 그러니 명절에 만난다 해도 할 말이 없다. 해서 예의 그 질문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중년 이상의 연배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잘 모르니까. 그럴 때는 차라리 잘 모르는 어린 친구를 사귄다고 생각하고 대화하라 조언하고 싶다. 친구를 사귈 때는 보통 그런 대화를 하지 않는가. 공통의 관심사를 찾고, 최근에 재밌었던 일에 대해 물어보고. 물론 어린 친구의 관심사나 즐거움이 중년 이상의 세대와 일치하긴 힘들다. 하지만 잘 모르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면 된다. 다름 아닌 친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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