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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02. 2023

부끄러움

다자이 오사무

무리카미 하루키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だざいおさむ, 1909 - 1948), 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 블로그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을 인용한 글이 비교적 자주 등장한다(그건 최근 그의 전집을 읽고 있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 그의 책을 읽은 건 비교적 최근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진솔하고 솔직하다는 점이다. 그는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그 시절, 일본이 인정한 천재 중에 한 명, 그만큼 잘난 사람도 없는데, 그는 왜 스스로를 그렇게 부끄러워했을까. 그의 가정사와 어린 시절 경험했던 일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만 나는 그의 성향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의 소설에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그 이야기들에서 그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 즉 스스로의 한계와 약점을 솔직히 토로한다. 부족하고 부끄러운 부분은 숨기고 잘난 부분만 드러내는 것이 인지상정이건만, 그는 오히려 반대로 함으로써 그의 소설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약함을 인정함으로써 강해지는 것, 그의 글이 갖는 힘이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의 대표작인 문장.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는 그래서 인간 실격'이라는 주인공 오바 요조의 고백. 책을 읽는 내내 인간으로서 실격인 삶을 살았다는 그 고백을 나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인간의 자격은 무엇인가. 지금 나의 모습은 인간 실격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허위와 위선 그리고 이를 숨기기 위해 안 그런 척했던 삶, 삶, 삶.

이곳에 글을 쓰면서 다자이 오사무처럼 솔직하고 싶었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일단 그가 갖고 있는 용기가 나에겐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도 순간으로 그쳤다. 나를 돌아보는 것도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했다. 하여, 나는 그의 글을 읽고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다.


자의식이 너무 강해서였을까. 그는 스스로의 한계를 너무 잘 알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지만.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우리에게도 이런 사람이 한 명쯤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두 잘났다고 나서는 시대니까 말이다.


그는 문장가, 글을 잘 쓴다. 작가라면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문장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매끄러운지 이해할 수 있다. 글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다는 것,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이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얼마나 많은가. 그는 이제 없지만, 글로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에 살아 있으니,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담긴 유려한 글을 남기는 것도 큰 복이다.



인간을 걱정하고,

인간의 쓸쓸함과 외로움과 괴로움에 민감한 일,

이것이 상냥함이며,

또한 인간으로서 가장 뛰어난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상냥한 사람의 표정은

언제나 부끄러움을 품고 있습니다.



그가 1946년 4월 30일, 가와모리 요시조에게 보낸 편지 중의 일부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편지를 읽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그에게 연민을 느끼며,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나처럼 말이다. 추운 겨울, 나는 그의 소설과 자전적인 산문을 읽으면서 시간을 잊곤 했다.





"피어라. 피어라."


안락한 생활을 할 때는 절망의 시를 짓고,

납작 꺾인 생활을 할 때는 삶의 기쁨을 써 나간다.


머지않은 봄?


어차피 죽는 거다.

꿈결 같은 멋진 로맨스를 한 편만 써 보고 싶다.

남자가 이렇게 기원한 것은

그의 생애에서 필시 가장 울적한 시기였다.



<다자이 오사무 _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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