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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06. 2023

글쓰기의 힘

팀 오브라이언 /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당신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경험을 객관화한다. 그것을 당신 자신에게서 분리하는 것이다."



하버드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었다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야 했던 미국 작가 팀 오브라이언. 베트남전쟁의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는 그의 소설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에 나오는 글이다. 전쟁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그가 고통스러운 경험을 이야기로 만들었다. 


전쟁이라는 힘든 상황 속에서 그를 버티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 관심을 끌었던 건, 그가 전쟁을 통해 경험했던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치유했는가’ 바로 그 문제였다. 


살면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한다. 상처를 주는 것이나 받는 것이나 힘든 것은 매한가지. 상처를 입으면 상황을, 상처를 준 사람을 원망한다. 상황이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이 소설에 실마리가 있다. 종군이나 참전의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낸 작가는 팀 오브라이언만이 아니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 <서부전선 이상 없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도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과 고통을 경험했고 그 경험을 이야기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고통과 상처도 이야기가 되면 '고통과 분리된 나'를 경험할 수 있다. 내가 겪은 경험을 글로 씀으로써 상처와 고통을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복된 말하기나 글쓰기를 통해 진실에 더 가까워질 수 있기도 하고.


팀 오브라이언도 그랬을 것이다. 얼떨결에 징집에 응한 작가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겪은 경험을 글로 풀어냄으로써 자신을 치유했다. 글쓰기의 진정한 힘은 거기에 있다. 


글을 씀으로써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른 사람들의 상처 또한 내 상처와 다르지 않다는 공감의 힘을 키울 수 있다. 상처를 글로 풀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통과 마주해야 하고, 다시 그때의 상황을 되짚어 회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잊고 싶은데 다시 기억해야 한다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다. 그럼에도 그 순간을 이겨내고 글로 쓰다 보면 가슴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어느 순간 풀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브런치에 거의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책을 읽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인용하면서 짧게 내 생각을 곁들인 정도에 불과하니 순전히 내 글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글들이다. 뭔가를 남기지 않으면 흘러가는 내 삶이 허무할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쓰기 시작했던 게 여기까지 이르렀다. 


별게 아닌 글이라도 뭔가를 쓰고 나면 기분이 풀린다. 나는 글쓰기의 힘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도 글쓰기가 내 삶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팀 오브라이언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경험과 생각 글로 풀어낼 수 있는 필력과 문장력까지 겸비하면 금상첨화겠다.


글을 잘 쓰는 비결은 없다. 매일 책을 읽고 꾸준히 쓰는 것밖에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누가 보든 안 보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쓰는 글은 내가 가장 먼저 읽는다는 의미에서 내가 제1독자니까. 


우리가 스스로에게 진실하려고 노력하듯이 내가 쓰는 글에도 진심을 담아 진실하게 써야 한다. 그렇게 꾸준히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고,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기리라 나는 믿고 있다.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글쓰기 말고도 많다. 중요한 건 뭔가를 시작해야 하고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는 것, 그중에 글쓰기만 한 것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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