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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07. 2023

문장의 힘

<칼의 노래>, <하얼빈>으로 유명한 작가, 작고한 이어령 교수로부터 어휘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김훈. 그의 문체는 건조하고 심플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 문체를 닮았다. 그는 평소 시간이 나면 사전을 본다고 한다. 정확한 용어, 불필요한 수식어를 쓰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 대표적으로 이렇다.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풍경의 안쪽에서 말들이 돋아나기를 바랐는데,

풍경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풍경은 태어나지 않은 말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적막강산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거느리고 풍경과 사물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가망 없는 일이었으나 단념할 수도 없었다. 

거기서 미수에 그친 한 줄씩의 문장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걸 버리지 못했다."


<김훈 _ 내 젊은 날의 숲>




생각해 보니, 내가 하는 말이나 쓰는 글에 불필요한 부분이 많았다. 정확히 알지 못해서 중언부언한 면도 있고,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서 길게 쓰기도 했다. 핵심을 짚으면 심플하다. 단순하기 위해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뭔가 더하려는 마음을 누르는 절제된 힘이 필요하다. 


그런데 인간관계는 왜 이게 안 되는 것일까. 아마 미련이 남아서 그런지도. 단호하면 상대의 마음이 아플지도 모른다는 미안함 때문인지도 모르고. 살면서 불필요한 것들은 줄여가고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려면,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갖지 못한 것을 더 가지려고 애태우지 말아야 한다. 


관계도 마찬가지. 물 흘러가듯이 부드럽게 때로는 단호하게 현실과 현상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 마음이 곤궁해지고 곤란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나는 가끔 마음이 복잡할 때, 김훈 작가의 문장을 읽으면서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정수만을 간직해야겠다고, 절제하는 힘으로 마음을 다스려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문장이 주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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