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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05. 2023

내일이 올까

이츠키 히로유키 / 사계 하루코 

나에게 ‘내일’이 있을까? 언젠가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이다. 힘들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무언가 기대할 일이 있을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내일'이 나에게 올지 안 올지는 오늘 밤 자봐야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늘 뭘 하다가 다 못하면 '내일 하지 뭐.'라는 말로 일이나 공부 그리고 약속 등을 내일로 미룬다. 


그 '내일'이 나에게 다시 올지 안 올지는 하나님만이 아는 사실이다. 자다가 코끝에서 호흡이 멈추는 순간, 내가 그토록 바랐던 '내일'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1967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일본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いつきひろゆき)는 그의 소설 <사계 하루코>에서 주인공 하루코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이에도 젊음 따위는 바람 속의 모래언덕처럼 자꾸만 형태가 바뀌죠.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이미 달라요. 지금이라는 시간은 바로 이곳에, 바로 지금밖에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반드시 내일이 온다는 보장 같은 것도 없죠. 아니, 이 세계에는 내일이란 게 없어요. 그러니 제한된 시간 속에서 좀 더 빨리 좀 더 뜨겁게 활활 타올라야죠. 한 시간 뒤의 세계가 어떻게 변해버릴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내일’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에게 ‘오늘’은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오늘’은 ‘내일’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내일’이 아닌 내가 보내고 있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인데, 나는 이 사실을 자꾸 잊고 산다. 


어제 오후에 걸었던 청와대 근처 삼청동 골목길, 평소에는 대로를 걷는 편이고 골목은 잘 가지 않는데 어제는 왜 그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는지 모르겠다. 가보지 않던 길을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곳을 걷다가 발견한 카페, 그리스 산토리니 지역에 있는 건물 모양으로 지어졌다. 맑은 하늘과 잘 어울렸다. 


골목에 이렇게 멋진 카페가 있나 해서 잠시 가던 길을 멈추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정말 산토리니 지역의 건물을 본떠서 만든 카페였다. 사진에서만 본 적이 있는 아름다운 풍광의 산토리니(Santorini)가 떠올랐다. 오래전 산토리니의 사진을 보고 언젠가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앞으로 산토리니에 갈 수 있을까? 


나에게 ‘내일’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혹시 그럴 기회가 오더라도 너무 늦을지 모르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 ‘오늘’이 무척 소중해진다. ‘내일'은 마음먹기 따라서는 희망의 단어이기도 하지만 내 현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절망의 단어이기도 하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순전히 나한테 달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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