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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24. 2023

엉킨 실타래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

평소 운전을 잘하지 않지만 어제는 사정이 있어 내가 직접 운전을 해야 했다. 전날 밤, 평소보다 늦게 잠이 들어 무척 피곤한 상태였다. 집을 나서는데 잠에서 바로 깼을 때처럼 눈이 여전히 빡빡하고 머리가 무거웠다. 아파트 출구를 나와 도로로 접어드는 삼거리, 신호가 없다 보니 반대 방향에서 오는 차와 교대로 가야 한다. 한 차를 보내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반대편 차량이 쏜살같이 내 차 앞을 지나갔다. 제동장치를 조금만 늦게 밟았으면 사고가 날 뻔했다. 조심해야 하는데 상대를 믿은 잘못이었다.


예전에 법대를 다닐 때 형법 시간에 배웠던 '다른 사람이 적절한 행동을 취할 것으로 믿으면 설사 그 사람이 부적절한 행동을 해서 내가 범죄를 일으켜도 면책된다는 신뢰의 원칙'이 떠올랐다. 물론 원칙이 그렇다는 거지 현실에선 잘 적용되지 않는 거의 사문화된 형법 이론이다. 아무튼 큰일 날 뻔했다. 속으로 기분 나쁜 욕지거리가 나왔지만 이미 차 운전자는 가버렸고 무의미한 일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래 조심하자.'라고 다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별로 그렇지 않은데, 이상하게 운전대만 잡으면 마음이 급해진다. 그렇다고 사무실에 급히 가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바쁘게 살았던 지난 시절의 경험이 습관이 된 탓일까. 한 번 든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공직을 떠난 지금, 삶을 관조하며 여유 있게 살자고 다짐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나는 여전히 그전 시간 속을 살고 있었다.


왜 직접 운전을 하게 되면 여유가 없어지는 걸까. 운전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 때문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경쟁자가 도로에 있기 때문에 그 사람보다는 앞서가기 위해 더 서두르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물론 나같이 승부욕이 넘치는 남자들의 경우다), 늘 막히는 서울 시내의 도로 사정, 천차만별인 운전자들의 운전 습관에 따라 진행 속도가 결정되는 것도 한몫한다. 한마디로 대중교통과 달리 운전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다.


서두르게 돼서 힘들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짜증 나고, 이래저래 운전은 피곤하다. 미봉책이지만, 운전을 안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늘 그렇게 살 수 없으니 내 자세부터 고치는 것이 그나마 취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여유가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부드러워질 수 있다. 여유는 무엇을 다시 채우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세상에 너그러워져야 나도 편해진다. 결국 삶의 여유는 나를 위해서, 불의한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삶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아무 걱정이 없는 것처럼 골목길을 느릿느릿 어슬렁거리고, 졸리면 아무데서나 낮잠을 자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절대 뛰어다니지 않는 고양이들. 그들에겐 여유가 있다. 언젠가 나는 고양이들을 보고 그들의 여유 있는 태도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주어진 삶을 관조하고 조용히 응시해야 비로소 여유가 생긴다. 잠깐 멈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행칼럼니스트 황희연 작가의 말도 마찬가지. "삶을 응시하면 악다구니 치며 달려갈 때는 몰랐던 많은 것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삶에 여유가 생긴다. 오래전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엉킨 실타래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이 실타래를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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