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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09. 2023

법대로 하는 게 좋을까

법률가로서 할 말인지 모르겠지만, 가급적 법적인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민사소송이든 형사사건이든, 어떤 경우라도 법률 분쟁에 휩싸이는 순간, 승패를 떠나 심신이 피폐해진다. 


검사 시절, 수많은 사건을 조사했다. 대개는 상대가 있는 사건들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재산 분쟁이나 감정이 관련되어 있는 명예훼손 사건은 쉽게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형사사건을 민사소송의 증거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의 성향으로 볼 때, 상대에게 양보할 것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합의하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양보는커녕, 상대가 잘 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는 심산이다. 


분쟁의 한복판에서 양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억울한 사람만 있고 피해를 준 사람은 없었다. 모두 자신이 억울한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경험한 사실이 같은데도 이 사람은 이렇게, 저 사람은 저렇게 해석하며 다르게 바라본다. 검사나 판사가 보기에는 바라보는 방향과 시선이 다를 뿐인데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편집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것도 흔한 일, 그러다 보면 억울한 사람만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피해를 당한 사람이나 준 사람이나 피곤하긴 마찬가지라는 거다. 조사 도중에 상대의 말이 거짓이라고 흥분하다가 극한 스트레스에 정신을 잃은 사람을 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오죽 답답하면 저러겠나, 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지우기 어려웠다. 


우리는 흔히 화가 나면 '법대로 해보자. 경찰서에 가자'는 등의 말은 하지만 실제로 법에 호소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고소를 하고, 소송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극한 상태까지 자신을 몰아넣은 셈이다. 


이겨도 사실 이긴 것이 아닌 것이, 그 과정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분노,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니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지나가다도 돌을 맞을 수 있듯 불가피하게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가 막무가내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법에 호소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주변 사람들이 법률적인 문제로 상의해 오면 가급적 법으로 해결하지 말라고 권유한다. 검사를 하면서 사건 때문에 수없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이다. 나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가급적 그냥 넘기려고 노력한다. 그게 나를 그나마 지키는 길임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도 다르지 않다. 속상한 일을 당해도 나 자신을 위해서 신속히 끊어내야 한다. 자꾸 곱씹으면 나만 피곤해진다. 아마 상대는 내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지 모르고 밤에도 잘 자고 있을지 모른다. 억울하고 분해서, 열받아서 나만 자지 못하는 거다. 


심호흡을 하거나 밖에 나가 걷기라도 하면서 괴로운 감정을 떨어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처음에는 잘되지 않겠지만 자꾸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괴로운 생각을 잊을 수 있다. 존 브래드쇼도 말했다. '부정적으로 보이는 상황이 벌어지면 일단 숨을 고르고, 그 문제의 어려움에 감정적으로 지배당하는 대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전략을 짜라고.' 


혹자는 시시비비를 분명히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고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그 역할을 내가 꼭 맡아야 하는가에 대해선 나는 회의적이다. 어차피 나에게 함부로 대한 사람은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제대로 당할 날이 올 텐데, 굳이 내가 총대를 멜 이유는 없다. 


아무튼 이런저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니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비록 자극을 받더라도 스스로 잘 다스릴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패막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내가 먼저 그렇게 해주라는 공자의 조언은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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